(월봉산에서 바라 본 만덕산과 할매봉 전경)
만덕이 가득하여 사람들을 편하게 하는 산
소나무와 참나무가 멋지게 어울려 사는 산
몸으로 품은 물을 골을 통해 운암제에 모으는 산
들머리의 운암이라는 동네가 아름다운 산
정자가 있고 입석이 있고 멋진 찾집이 있는 산
오랜 세월을 지키며 몸통을 키운 느티나무가 있는 산
상큼한 봄향기가 가득한 드릅나무가 있는 산
생이바위가 있고 신선바위가 있는 산
월봉산 국수봉 수양산 가는 길이 있는 산.
만덕산 할매봉 가는 길.
가슴을 뜨겁게하는 철쭉이 사방에 피었고
옥녀꽃대가 길을 안내를 하고
둥굴레가 초롱을 잡고 앞장 서는 산
할매봉 가는 길
오월인데 이제야 핀 현호색 무리들이
늦은 나팔을 불어대자 먹구름이 몰려오고
세찬바람이 바위에 부딪치며 소나무를 흔들면
솔솔 솔향기가 머릿속까지 들어오는 산
목 발 틈에 애기나리가 밭으로 사는 산
나도삼이라며 개별꽃이 골짝을 밝히는 산
귀때기만 남은 누루귀가 털마져 털어내고
540m 꼭대기에 외롭게 사는 산
덜꿩나무의 하얀꽃에 호박벌이 가득하고
윤판나물은 수줍어 노랗저고리에 숨기는 산.
천남성은 잔인함을 줄기속에 앙큼하게 숨기고
억새와 조팝나무는 바람 덕에 도란거리는 산
할매봉 가는 길.
벌 나비는 주변을 왱왱거리고
월봉산가국수봉이 폼새를 자랑하는 산
만덕산 할매봉 가는 길.
** 볼 만한 역사유적 유물로는
몽한각(潭陽 夢漢閣) 은 대덕면 매산리에 있으며
정면5칸 측면2칸으로 팔작지붕이며 조선 인조1803년에
자방문화제 54호로 1974년에 지정하고 보호하고 있음.
이 건물은 이서(李緖)의 재실(齋室)이다. 이서는 태종의
고손이며 양녕대군의 증손으로 중종 2년(1507) 이과(李顆)의
옥사(獄死)로 인하여 전라도 창평으로 유배되었다가 그 후
14년동안 귀향살이 끝에 풀렸으나, 서울로 돌아가지 않고
이 곳 담양군 대덕면에서 일생을 마쳤다. 유배시절 그의
시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두현운산장, 한창세월다, 금명금야몽, 비도한강파
(斗縣雲山壯, 寒窓歲月多, 今明今夜夢, 飛渡漢江波)'
몽한각은 양녕대군의 후손들인 당시 담양부사 이동야(李東野)와
창평현령 이훈휘(李薰徽) 등이 이 지방에서 관직을 보내면서
오랫동안 이서공(李緖公)의 재실(齋室)이 없음을 알고
순조 3년(1803)에 현재의 몽한각(夢漢閣)을 건축하였다고 한다.
건물은 남서향으로 자리잡고 두 단의 높은 축대를 쌓고
두벌대의 기단 위에 세웠다.
정면 5칸, 측면 2칸에 전후좌우(前後左右) 반퇴(半退)집으로
쪽마루를 사방에 돌린 아주 특이한 형식을 하고 있다.
1916년 중수하였고, 1979년 지붕번와 보수를 하였다.
몽한각의 건축적 특색은 양쪽 익칸(翼間)의 전면부에서 보이는
퇴칸의 처리이다.
즉 일반적으로 이러한 형식의 건물에서 보이는 외목도리가
부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자료는 담양군청 100%발췌)
** 낙지가(樂志歌)는 조선 시대 이서(李緖 : 1484∼)가 지은 시로
가사문학의 시초로 보고 있으며, 원본은 몽한영고에 수록되어 있다.
부귀영화를 버리고 자연 속에서 욕심없는 삶을 살고자했던 정서를 담아서
표출한 가사가 낙지가이다.
이서는 벼슬과 부귀영화를 버리고 자연 속에서 죽림처사로 살았던 중국의
중장통(仲長統)을 흠모하고 닮고자 했으며 실제로 몽(夢)처럼 자연속에서
일체가 되어 살고자 했으며 가사가 벼슬과 진흙탕 격인 정치 싸움에서
희생양이 되어 죄인으로 귀양을 온 이곳에서 자연인의 삶과 자신의 마음을
표현 했으며 이서의 낙지가를 필두로 송순 임억령 정철 김성원등 에게
영향을 주어 기라성 같은 가사문학이 탄생하게 되었고 우리 담양군 남면에
가사문학관이 무등산 자락에 있다.(낙지가 원본은 생략함)
이밖에도 대덕면에는 미암일기 미암사당 김선기가옥이 있으며
대덕면 소재지를 지나 옥과 방향으로 가다보면 문학리 못 미쳐
왼편으로 안내판이 보이는데 죽 가면 된다.(승용차로10분~20분)
**만덕산의 주변을 알고 만덕산 산행하기**
만덕산 산행이 시작되는 상운마을은 만덕산 등허리를 구름이
감싸고 있다하여 운암리라 부르고 있으며,산 안으로 위쪽에
있다고 하여 상운이라고 부른다.
500년전에 평산신씨와 순안안씨가 정착하였고 월봉산 남쪽으로
이어지는 국수봉 아래의 바람난골에는 1986년까지 중석탄광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고 한다.
만덕산은 문학리 근처에 농바위라 불리는 큰바위 밑으로 아주
큰 굴이 있었는데 난리때는 인근 주민 만 여명이 피난하여 목숨을
구하게 되어 이때부터 만인이 산의 덕을 입었다 하여 만덕산이라
불렀다는 전설이 있으며,하운마을에서는 일제 시대 일본의 박해에
항거하던 마을 청년들이 애국하는 옥류대를 조직하고 독립운동을
벌이다가 1945년 일본이 망하자 마을 정자 옆에 해방 기념비를
세워 지금도 보존되고 있다.
마을 뒤 만덕산 산정에 1920년대까지 가뭄이 들때면 기우제를
지냈다는 무잿등이 있으며 저수지 부근인 주산에 애기당이라는
샘이 있는데 자식을 낳지 못한 부녀자가 이 샘을 찾아 기원하면
자식을 얻을 수 있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만덕산(萬德山 575m) 가는 길은 광주에서 창평가는 길 60번을
타고 옥과방향으로 가다보면 대덕면 소재지 들입에 곡성가는 길이
이정표와 함께 몽한각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보이는 곳에서 우회전하여
직진하면 오른쪽에 운암저수지가 있고 하운마을을 지나 만덕사를 지나
상운마을을 지나면 왼편에 산행로를 알리는 표지판과 이동식 화장실이
보이고 주차장이 있다.
산행의 거리가 짧아서 왕복 2시간30분이면 충분하고 누구나 산책 하듯
오를 수 있는 산으로 소나무와 참나무가 울창하고 물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입구가 더 아름다운 산이다.
**사진기가 고장이나 기록이 없으나 숲공부하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매력적인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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