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아산(764m) 가는 길
희아산을 가려면 호남고속도로 석곡 I/C를 통과하여 구례(압록)방향 18번 도로에 있는 신촌마을에 태안사의 안내판이(840번도로) 있으며, 태안사를 지나 6km 정도를 가면 월등면소재지가 나오고 승주읍 방향(857번도로)으로 가면(4~5km) 희아산 자락의 능선이 시작되는 노고치에 도착 할 수 있다.
노고치에 있는 통신탑 옆의 공터에 주차하면 희아산을 오를 수 있으며, 곡성의 목사동면 죽정리와 용봉리에서도 오르는 산행로가 있으며(이곳으로 산행을 하려면 목사동면 소재지로 가야함)희아산은 삼산과 비래산(섬진 제7지맥)을 동시에 산행 할 수가 있으나 원점 회귀형이 아니라 산행 중 다른 차량이 들머리와 날머리를 연결해주지 않는다면 동시 산행은 매우 어렵다.
희아산은 약 764m로 울창한 숲으로 구성되어 있어 답답한 산행이 계속되나 숲속의 소쇄함을 100% 누릴 수가 있으며, 소나무 숲이 끝도 없이 울창하고 능선을 경계로 참나무 숲이 뚜렷하게 선을 그리듯 펼쳐지며 비교적 두텁고 부드러운 흙산(육산)으로 일부 구간의 암석을 재외하면 대체적으로 원만하거나 약간은 밋밋한 산행이 되기 쉽다.
볼만한 바위로는 성벽바위가 있으나 바위 틈에 크게 자란 나무들 때문에 제대로 볼 수가 없으며 봄철 산행으로 적합하고 뜨거운 햇빛이 싫은 여름에 산행을 한다면 정상까지 시원하게 갈 수가 있으며, 산행로의 주변에는 야생화가 지천으로 자라고 있어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봄이나 가을 산행으로 적합한 곳이라는 생각이 되었다.(삼산도 야생화가 많음)
주요 식생으로는 수종이 다양하지 못하나 소나무 참나무 대팻집나무 개암나무 노각나무 쪽동백나무 다래 머루 장구밥나무 서어나무 개서어나무 단풍나무 합다리나무등이 자라고 있으며, 배틀제 부근의 매미꽃 군락지는 지금까지 본 중에서는 최고의 것이었고 식생 또한 좋아 꽃 색이 밝은 진노랑의 화사함이 천하일품이었다.
제비꽃 은방울 은난초 박새 여로 천남성 둥굴레 자란초 뻐꾹나리 용둥굴레 죽대 민백미 미나리냉이 더덕 취 종류가 여러 가지 자라고 있고 제비꽃의 종류도 다양하게 보인 이유는 아구대(남부 아구대와 남해안 아구대)가 겹치는 곳이라 다양한 야생화가 잘 자라고 있었으며 자란초가 자라고 있다고 하면 고개를 갸우뚱 할 수 있지만 잘 자라고 있으며, 특이하게도 그 흔한 마삭줄은 거의 보이지 않으나 가끔 군데군데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고 사스레피나무나 차나무는 보이지 않았다.
특별하게 뛰어난 산이 아니라 찾는 사람이 매우 적어 자연환경은 매우 좋은 편이었다.
그 중에서도 계곡의 매미꽃 나무 밑의 애기나리 산행로 주변에 끝도 없이 펼쳐진 은방울이 인상 깊었으며 이런 길을 2시간 정도 가면 비로소 닭봉과 정상에 이르러서야 겨우 주변의 일부를 조망 할 수가 있으며 산행로는 깨끗하게 잘 관리되고 있었고 우리의 자연은 우리 스스로가 지켜야지 지방자치관서를 의지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상부근에 있다는 큰배바위나 작은배바위는 나무에 가려 전체적으로 볼 수 없었으며, 날씨가 좋으면 지리산과 남해 앞 바다와 섬진강을 볼 수가 있으나 시야가 흐린 관계로 보지 못했고 희아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월등면의 경치는 낭만 가득한 전원의 풍경을 금방이라도 아기자기한 이야기로 들려 줄 것만 같이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다.
희아산까지는 왕복 3시간 30분 정도가 걸리고 산행을 마치면 형제봉(572m)의 8부 능선에 옥녀천이 있는데 그곳에서 목욕을 하면 피부병이 낫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는데 가보지는 못했고 시간이 된다면 삼산까지는 산행을 할 수가 있으며 역시 산행길은 밋밋하고 변화가 없어 지루할 것이다.
희아산은 유치산(532m)과 닭봉과 능선을 이루고 삼산(765m)과 비래봉(691m)이 주능선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희아산 앞에는 형제봉(339m)이 있고 뒤에는 숫개봉(518m)이 삼산(765m) 앞에는 형제봉이(일명 성출산572m) 뒤에는 깃대봉(435m)과 비래봉에서 약간 비켜서서 신유봉과, 희아산과 삼산과 비래봉이 있는 산 좋고 물 좋은 목사동면(木寺洞面)에는 한 때 절이 18개나 있었다고 전하나 지금은 암자 하나만 있을 뿐 절 다운 절은 없으며 일부에서 복원을 하고 있는 중 이라고 했다.
유치산에서 발원하여 섬진강으로 흘러가는 목사동천이 면의 중앙부를 흐르면서 토지를 비옥하게 하고 수량이 풍부하여 살기 좋은 고장이 목사동면이 되었다.
목사동면의 용봉리나 죽정리에서도 희아산을 오를 수가 있으며 삼산은 목사동면 용사리에서 비래봉은 구룡리에서 각각 오를 수 있으나 2년 전에 구룡마을에서 비래봉을 산행하려다 산행길이 관리가 되지 않아 포기하고 용사리에서 삼산을 산행 한 적이 있었는데 마찬가지로 산행로는 관리가 되지 않아 이번에는 순천 월등면 쪽에서 희아산을 산행하게 된 것이다.
주요등산로는 1.운월리(노고치)-배틀재-닭봉-희아산(왕복 3시간30분 소요)월등면 쪽
2.죽정리-유치고개-닭재-닭봉-희아산(왕복 3시간정도)목사동면 쪽
3.용봉리-희아산-1월등재-2월등재-용봉리(왕복 4시간 정도)목사동면 쪽
주의할사항 1. 그 외에도 산행로는 많으며 주의 할 점은 물이 없으니 미리 준비해야 함.
주변 관광지 1.순천 선암사와 곡성 태안사가 자연의 모습을 오롯하게 간직하고 차별화 된
절 처럼 가깝게 있으니 연계하면 더 보람찬 산행이 될 것임.
마을은 산과 필연적으로 풍수지리로 연결되어 있으며 마을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으니 산과 산이 있는 지역의 유래와 문화를 살펴보면 월등면은 대평리라는 마을 뒷산 옥녀봉에서 마을에 이르는 모양이 둥근달을 닮았다하여 月자를 따고 월룡리에 있는 두류봉이 선인독서형으로 생겼고 마을 앞의 남두류봉이 책상을 닮아 신선이 공부 할 때 두류봉의 능선에 등잔혈에 등불을 밝혀 공부하는 형상이라하여 燈를 붙혀 월등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주변의 마을 이름도 한결같이 월룡 월평 신월 운월 월림 계월등으로 월(月)자를 붙인 마을 이름이 생겨나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월등면은 산골형의 작은 면(面으)로 농토가 적고 협소하나 비옥한 토지와 비좁은 농토로 인하여 산지의 높은 곳(해발300~400m)까지 개발하여 복숭아와 매실 감등을 주로 재배하고 있으며, 복숭아를 이용한 식품은 꽤나 잘 알려진 월등면의 특산물로 전국에서 각광을 받고 있으며, 그 맛 또한 달고 맛있어 선암사와 태안사를 오가는 관광도로의 중간지점에 있는 잇점을 살려 농장에서 직판하는 거래 형태가 발달되었다.
월등면은 승주읍과 경계로 문유산(688m) 바랑산(619m) 희아산(763m)있고 월등천은 섬진강으로 합류하며, 월등의 주요문화로는 “송천달집태우기”가 전남지방무형문화제 24호로 등록되어 해 마다 정월대보름날이면 달집태우기 민속행사를 재연하고 있다.(순천시청 문화관광 자료 일부 발췌)
희아산을 목사동면 죽정리나 용봉리에 산행을 시작하였다면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927년)의 탄생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장군의 유적지를 둘러보는 것도 산과 문화를 연계한 알찬 산행이 될 것이다.
신숭겸장군은 왕건을 도와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건국하는데 공을 세운 일등공신으로 왕건이 즉위하고 얼마 되지 않아 견원이 신라를 공격하였는데 대구 팔공산에서 후백제군에게 포위되어 위험하자 장군은 태조 왕건의 갑옷를 입고 적과 싸우고 이틈을 타 태조 왕건은 위험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나 장군은 전사하고 말았다.
용사리에는 태조 왕건을 구하고 장렬하게 전사한 신숭겸장군의 용산단이 있고, 선조(1589년)에 창건하여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덕양서원(곡성 오곡면)은 정유재란 때 불타버렸으나 선조 36년(1603년)에 중수되고 현종 6년(1665년)에 서원 규모를 불타기 이전의 상태로 복원하였으나 흥선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년) 철폐되었다가 1934년 지방의 유림에 의해서 복원되었다.
1695년에는 덕양이라는 사액을 받아 지방교육을 담당하였으며, 건물은 강당 동제로는 연서제와 덕양사 서제로는 신덕제와 진사청으로 이루어졌으며 외삼문과 내삼문이 있으며, 유물로는 덕양서원(곡성 오곡면) 건사사적비와 강당과 연서제의 내부 현판 19개가 전해지고 있고 구룡리의 용산제(지방기념물 98호)와 함께 지방기념물 56호로 지정되어 관리하고 있다.
구룡리(九龍里)는 마을 뒷산 비래봉에서 마을 앞까지 9개의 바위가 있으며 능선이 용의 모양을 했다하여 구룡리라 부르게 되었으며, 신숭겸장군의 탄생지이며 이곳에서 매년 음력 9월17일에 제사를 지내는 용산제가 있으며 전사할 때 장군이 탔던 말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용사리는 신장군이 보성강변 용바위(용암)에서 무술을 연마했다고 하여 용암(龍岩)이라 하였으며, 마을 앞 냇물에다 다리를 놓아서 다리목이라 부르다가 1914년 용암과 용사를 합하여 용사리라 했다.
신숭겸장군이 무술을 마치고 목욕을 했다는 용탄(龍灘)이 있으며, 마을의 모양이 배처럼 생겼다 하여 우물을 파면 망한다는 구전에 따라 냇가 물을 이용하다가 1971년 이후에야 샘을 파서 물을 이용하고 있다고 마을 사람은 전했다.
죽정리는 마을 위의 대밭이 왕성(旺盛)하자 죽림(竹林)이라 부르다 1914년에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죽정(竹亭) 2구로 개칭(改稱)하게 되었으며, 죽정3구 (猶峙마을)는 마을뒷산이 닭혈이라 닭재(猶峙)라고 했으나 1914년 원정, 월평. 죽림. 송전 등을 통폐합하는 과정에서 원정과 죽림의 한 글자 씩 따서 죽정리라 부르고 있으며 희아산 정상에 큰배바위. 작은배바위가 있는데 옛날 배를 맨 흔적이 있었다고 한다.
전통문화로는 낙죽장 한병문 선생이 공북리에 사시는데 삼국시대 당시 백제에서 궁중에 진상품으로 올려져 옛 선조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호신이나 충절도로 허리춤과 주머니나 지갑 속에 비장의 무기로 지니고 다녔던 칼이며 낙죽장의 대가인 한병문씨는 13살 무렵에 재종조할아버지로부터 한문공부를 배우다 낙죽장의 기술을 21살까지 전수를 받았으며, 할아버지의 작고로 낙죽장이 되었다.
칼을 제작하는 시간은 보통 10여일이며 10가지에 달하는 재료를 구하는 시간은 1년은 족히 걸리고 작업 때에는 정신을 집중하고 온 몸의 기를 한데 모아 제작하기 때문에 칼이 완성되면 거의 탈진상태에 이른다고 한다.
낙죽장도는 15㎝내외 길이에 7마디 이상의 대나무에 인두로 지져서 깨알 같은 글을 옮겨 곱게 새겨 넣는데 낙죽장도의 무늬는 구름, 산수, 매화, 다람쥐, 왕새우, 포도넝쿨 등이며 글씨는 주로 한시를 넣는다고 한다. (자료는 곡성군청의 문화관광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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