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깔크막의 숲 산행 이야기

석문산(石門山 137m) 가는 길(09..4.19)

깔크막 2009. 4. 22. 14:55

석문산(石門山 137m) 가는 길

 

봄이라기보다는 한 여름을 느끼면서 집에서 가까운 석문산(石門山)에 가기 위해 본량동을 거쳐 기억에 의존하며 삼도를 지나 함평 방향에서 나주로 가는 길을 가다보니 삼도서초등학교가 보여 길을 잘못 가고 있다는 생각에 주민에게 몇 번을 물어보니 나주 방향으로 가면 농협이 나오는데 그곳에 석문산이 있다는 구릿빛 얼굴의 선한 농부가 길바닥에 그림까지 그려가며 설명해 주었다.

대산삼거리에 도착하니 삼도남초등학교는 폐교되었지만 다른 용도의 학교로 사용되고 있었고 옆길에 석문산 보호회에서 세운 산행 안내도가 서 있어 어렵지 않게 석문저수지까지는 쉽게 갈 수가 있고 저수지 옆에 이동식 편의시설까지 갖추고 넓지는 않지만 차량도 몇 대 정도는 주차 할 수가 있도록 되어 있었다.

겨울과 봄의 혹독한 가뭄에도 넉넉하지는 않아 보이지만 석문저수지는 물을 담고 석문산을 그 물 속에 잡아 앉혀 놓은 것 같은 아름다운 모습을 제일 먼저 보여주었다

 

 

 

                                     (석문 저수지 제방에서 바라 본 석문산의 전경)

 

저수지 위에는 주말농장과 체험농장에서 벌써 씨를 뿌렸는지 깔끔하게 잘 정리 되었고 문패를 줄줄이 달고 한가롭고 여유 있는 모습으로 우리들을 맞이해 주는 것 같았다.

석문산의 기슭에는 관음정사가 양지바른 곳에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 양식 건물을 입구에 두고 앙증맞은 절집이 바위를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는데, 1880년 남민현씨가 석문사를 개창하여 1974년에 지금의 명칭인 관음정사로 바뀌었고 1991년에는 법륜종 사찰로 등록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좁은 면적에 극락전 천불전 범종각등의 건물이 있으며 천불전 뒤에는 여래불이 온유한 미소를 머금고 있으며, 바위 틈에서 나오는 석간수의 맛이 일품이었다.

관음정사의 옆으로 산행길이 희미하게 있으나 그 흔한 꼬리표가 한 개도 없어 집에서 가깝고 잘 안다며 아무런 준비도 안 했던 것이 후회로 몰려오기 시작하였으며 준비를 안 했던 덕택에 효율적인 산행을 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석문산에 대해서도 그냥 남문바위와 북문바위 정도를 기억하고 수직으로 뚫린 된 굴의 깊이가 100m나 되고 그 굴에 불을 피우면 10km나 떨어진 평동에서 연기가 나온다는 것을 제외하면 석문산에 대하여는 물론 주변의 산이나 문화 유적에 대해서도 전무한 상태로 석문산을 대하다 보니 별 다른 감흥이 나지 않았다.

관음정사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난 산길을 터벅터벅 오르는데 날씨 탓인지는 모르지만 힘이 쭈욱 빠지고 무척 더워 등에서는 식은 땀이 줄줄 흘러 내려 힘들지 않게 오를 수 있는 산인데도 숨이 차고 다른 사람들은 다 쓰는 모자를 못 쓰는 관계로 뜨거운 햇볕을 피하기 위해 숲으로 가는 길은 멀게만 느껴지는 것 같았고 희미한 산행 길을 따라 가다보니 자꾸만 다른 길로 빠져 몇 번이나 산행길을 바로 잡으며 석문산의 정상인 부처봉에 이르러서야 우리가 원 하였던 방향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관음정사 전경 뒤로는 부처봉이 있음)

 

부처봉의 오른 쪽에는 두어 길 정도 되는 절벽이 끝도 없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었고 자칫 관심 없이 그냥 지나치다보면 못 보고 지나갈 수가 있을 정도로 숲 길에 숨어 있엇다.

이런 형태의 길이 1km정도는 계속 되는데 능선바위나 칼바위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줄바위라고 석문산보호회는 안내판에서 보여주고 있었다.

산행길에는 수리딸기 산초나무 청미래덩굴등이 잡목들과 어울려 자꾸만 가는 길을 막아서고 가끔 아그배와 콩배나무가 하얀꽃을 피웠고 가끔있는 숲 속의 폭군으로 불리는 층층나무도 하얀꽃을 피우고 있었다.

노간주나무 수꽃이 우리들이 지나가면서 스치면 노란 꽃가루를 이때다 싶어서인지  사정없이 털어내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고 관심밖에 있어서인지 이름을 불러 줄 수가 없는 산새들이 사방에서 서로의 짝을 부르는 소리가 석문산을 더 빛나게 하였다.

난장이붓꽃과 제비꽃 별꽃 쇠별꽃 광대나물 냉이 애기꽃이 밭두렁과 죽은자의 영역에 가득하고 밭에서는 한 자 정도로 몸을 키운 더덕이 하늘을 향해 꿈틀거리듯 덩굴의 끝을 빙빙 돌리는 모습을 보는 것 만 같았다.

석문산을 반 바퀴나 돌았는데 유명한 바위의 모습을 볼 수가 없어 다시 석문저수지에서  산행을 시작하다보니 이제야 제대로 된 산행을 할 수가 있었고 고인돌의 유적(꽃밭산)과 멋진 소나무를 배경으로 사진 찍기 좋은 곳도 있었고 멀리 보이는 용진산의 석봉의 모습이 품위있게 다가서고 북문바위에 올라 보니 이 작은산에 거대한 바위의 모습에 감탄을 하며 작은산이지만 산 전체가 편마암 조각들로 이루어져 척박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이 소나무의 키가 유난히 작고 왜소하다는 것을 아는 순간 알 수가 있었다.

 

 

                                                          (북문바위의 모습)

 

북문바위의 구석구석이 다른 산의 절벽과는 전혀 다르게 뾰쬭뾰쬭한 돌들로 얼키고 설켜 단단하다는 느낌이 없이 잡고 힘을 주면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갈 것만 같은 석질을 보여주고 바위가 거대하게 뭉쳐 있기는 하지만 조각조각 나누어져 켜켜로 뭉쳐져 있는 관계로 바위와 바위사이는 틈이 많고 그곳에는 암벽등반을 한 흔적도 있고 귀중한 한봉도 한 통이 있었으나 벌들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바위의 높이는 높은 곳은 아마 20~30m는 족히 되어 보이고 바위에 올라 바라보는 석문저수지와 멀리 반석같은 논들이 어울려 한 폭의 멋진 풍경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북문바위와 남문바위 사이로 아주 옛날에는 물이 풍부하게 흐르고 다듬어지지 않았을 때는 또 다른 절경을 보여주었으리라 미루어 짐작해 보지만 현실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계곡이라고 표현하기가 싫을 정도의 잘 정비된 수로는 몇 년전 화순 모후산에서 하천을 정비했던 그 모습을 보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화순의 모후산은 그때의 실수를 만회하고 지금은 자연하천처럼 아름답게 정비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는데 획일적이고 지극히 인간 중심의 하천으로 꾸며진 석문산 계곡의 하천을 보고 있으니 왠지 씁쓰레한 마음이 들어 남문바위의 산행을 포기하고 주말농장이 있는 저수지를 향해서 타박타박 내려오니 괜히 지치고 힘이 들었다.

체험농장 옆으로 흐르는 계곡을 대나무로 V자 모양으로 하천을 덮고 아마 나중에 이곳에 덩굴식물을 심어 하천의 딱딱한 모습과 자연과 어울리지 않는 부조화된 모습을 조금이라도 감추어 볼 요량이라고 생각하며 다가 올 여름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석문산은 광산팔경의 하나로 빼어난 경치를 이렇게 표현하는 시가 있어 소개해 보면

두 봉우리가 서로 맞서듯이 서동으로 서 있는데(兩峰對峙立西東)

양쪽 바위는 석문이 되고 가운데로 통하는 길이 있네(岩作石門行路通)

아침비가 잠깐 개고 푸른 하늘은 아득한데(朝雨乍晴天杳漠)

무지개는 가로로 걸려 공중에  떠 있네(채예橫互驚浮空). 라는 시가 전해져 내려오고( 石 門 架 霓 )

 

 

                        (가운데 뾰쬭한 용진산의 석봉과 토봉이 보인다.)

 

또 다른 유적으로는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칠성마을의 고인돌 무덤으로 49기가 있으며 시대는 청동기시대의 것으로 반경 200m의 구릉에 2개군으로 모두 49기가 분포되어 있고 모두 굄돌이 낮거나 없는 남방식으로 20여기는 굄돌이 없고 덮개돌은 장방형 또는 원형과 타원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개군은 모두 23기로 방향은 동서로 2열로 배열되어 있으며 굄돌은 판석이나 자연석을 사용했으며 또 다른 군은 26기로 구릉 경사면에 남북으로 1열로 배열되어 있으며 북두칠성의 배치와 비슷하였다.

아마도 마을 이름도 이 고인돌 무덤의 배치 모습에서 유래되었을 것이라고 광산문화원은 이야기하고 있었다.

석문산은 항일 의병의 활동이 활발하였는데 오상렬(1879 고종 16년~1907년)선생은 1906년 김태원장군을 의병장으로 선생은 도통장이 되어 대명동(본량면 쪽 용진산 남쪽에 있음)  산골에 무기공장을 세워 무기를 만들어 이곳 석문산에서 5일간의 치열한 전투를 벌려 100여명을 사살하는 공을 세웠고 1907년에는 지금의 사호동이 있는 사호치에서 45일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장열하게 순국하였다.

이처럼 광산에서는 의병활동이 용진산과 어등산 석문산 등에서 매우 활발하게 활동하였던 항일의 유적지가 곳곳에 산재하고 있으나 지금은 그 흔적을 역사에서나 찾을 수가 있어 매우 안타까운 실정이었다.

석문산이나 용진산과 어등산으로 산행이라도 온다면 다시 한번 옷깃을 여미고 장열하게 순직한 선열의 넋이라도 기리는 마음에서 잠깐이라도 정갈한 마음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 하였다.

 

석문산의 산행은 석문저수지 제방길을 따라 고인돌 군락이 있는 곳으로 올라 북문바위를 거쳐 계곡으로 내려와 다시 남문바위를 오르고 난 다음에 다시 계곡을 넘어 부처봉으로 오르면 석벽처럼 빙 둘러쳐진 줄바위길의 장관도 볼 수가 있고 산행을 마친 다음에 관음정사에 들러 시원한 석간수 한잔을 마시는 것도 좋을 것이다.

만약 2시간 정도의 산행 시간이 짧아 여운이 남는다면 가까운 용진산 산행을 다시 하는 것도 좋을 것으로 생각되어 우리 일행은 용진산으로 향하며 석문산 산행을 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