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깔크막의 숲 산행 이야기

산성산(연대봉603m)금성산성 가는 길

깔크막 2009. 4. 15. 19:46

산성산(연대봉603m)금성산성 가는 길

 

산성산(연대봉 603m)은 담양의 북쪽에 있는 산으로 순창의 강천산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산으로 담양에서 메타세콰이어 가로수 길인 24번 도로를 타고 순창방면으로 가다보면 금성면소재지가 나오고 여기에서 조금만 가면 삼거리에서 추월산과 금성산성의 안내판이 마중을 나오는데 농공단지를 지나 담양온천과 경계를 함께 한 금성산성 주차장 가는 길이 나온다.

금성산성으로 가는 길은 여러 곳이 있으나 이곳에만 편의시설이 있어 이용하기에 제일 적합한 곳이며 임도를 따라 1.5km 정도를 가면 우뚝 솟은 산성의 정문 격인 보국문(외남문)이암반 위에 우람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금성산성은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거의 원형에 가깝게 보존되고 있는 산성으로 역사적 가치나 문화적 가치를 판단하여 사적353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으며, 장성의 입암산성과 무주의 적상산성과 함께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로 그 역할을 다하고 있으며 무너진 산성의 일부를 지금도 원형에 가깝도록 심혈을 기울려 복원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진 금성산성을 한 바퀴 돌아보면 외성의 주변은 대부분 천애절벽으로 이루어져 감히 적이 침투하기는 지금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가 있고 주변에 높은 산이 전혀 없어 산성의 내부를 볼 수가 없다는 것을 확인 할 수가 있으며 물이 풍부하고 주변의 경치가 아름다워 지금에 와서는 찾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졌음을 알 수가 있다.

     

 

(운대봉에서 바라 본 북바위 가는 길 )

 

산성산은 시루봉 장대봉 송대봉 운대봉 연대봉 철마봉 노적봉등이 빙 둘러 앉아 회의를 하는 모양으로 있으며 우리 일행은 시루를 엎어 놓은 것 같은 시루봉을 거쳐 동문의 북바위(송대봉) 운대봉과 주봉인 연대봉(603m)을 지나 철마봉을 돌아 한 바퀴가 7.5km 정도 되는 코스를 선택하고 아주 천천히 느릿느릿 돌아 볼 요량으로 산행을 시작했다.

산성의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골무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구나하며 무심코 지나왔는데 골무꽃이 아니고 긴병꽃풀이 양지바른 곳에서 군락을 이루고 있었으며 제비꽃과 고깔제비꽃 민들래가 성문을 들어서기 전부터 혼을 빼 놓았고 나도물통이 각시붓꽃 황매화 현호색 족두리풀 단풍취 그리고 봐도 봐도 어려운 꼭두서니과 식구가 부내 이름은 뭘까?. 라고 묻기라도 하는 듯이 길가에 웅크리고 있었고 산벚꽃 개복숭아 쇠물푸레가 꽃을 풍성하게 피웠고 양지바른 곳에서는 양지꽃과 뱀딸기가 노란 꽃을 뙤약볕 아래 봄맞이 꽃마리 진달래도 뒤질세라 꽃의 축제에 합류하여 산행을 즐겁게 해주었으며 매화말발도리가 바위 틈에서 왜소한 줄기에 덕지덕지 꽃을 매 달고 있는 것을 보니 혹독한 겨울 가뭄과 봄 가뭄에도 자신을 위해 할 일을 열심히 한 탓인지는 몰라도 꽃 색이 무척이나 깨끗하고 고왔다.

 

      

 

        (북문에서 본 담양호와 철마봉 산행로의 모습 그리고 노적봉에서 바라 본 외남문의 모습)

 

금성산성은 고려시대부터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축성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으나 일부 학자들은 삼한시대 또는 삼국시대에 축성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는 있으나 역사의 기록이 없으며 뒷받침 해 줄 만한 유물이나 고증이 없어 신빙성은 떨어진다고 볼 수가 있으며, 고려사절요에 고려 무왕6년 1380년에 왜구의 침략에 대비하여 개축하면서 비로소 금성이라는 기록이 있고 고종43년 1256년 몽골의 차라대군(車羅大軍)이 주둔하였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13세기 중엽에 축성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산성의 둘레는 7345m이고 내성이 있으며 성문과 옹성과 사찰 민가 우물 관아 군시설까지 갖추고 있고 이것은 담양에 읍성이 없어 유사시에는 읍성의 역할을 하기도 했고 담양읍의 동남쪽의 남산에 있는 봉화대가 당시에는 유일한 통신수단으로 활용되었을 것이다.

천혜의 지형조건을 이용하여 축조한 산성으로 임진왜란 동학혁명 정유재란 때도 파괴되지 않고 원형을 유지 할 수가 있었던 이유는 지리적 위치 지형적인 조건으로 보아 대규모의 전쟁을 하기에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산성을 분류하는 방법에 따르면 내륙성이고 중복도로 구분하며 복곽식 석성으로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산성이 금성산성이다.

동문 서문 남문 북문이 있었고 지금은 외남문(보국문)과 내남문(충용문)을 복원하여 위용을 자랑하고 있으며 동서남북의 문 외에도 시루봉 근처에 암문이 있었다고 하나 기록으로 전해지는지는 잘 모르겠다.

산성은 행정구역상으로 도림리(道林里)인데 안쪽되뱀이와 바깥되뱀이라는 마을이 1680년경에 형성되었으나 지금은 동자승이 수도하고 무술을 연마하는 곳 외에는 인가는 없으며 당시의 모든 건물은 불타 없어져 터만 있을 뿐이다.

 

 

 

                 (연동사지 3층석탑)                                        (연동사지 지장보살 입상)

 

주변의 볼거리로는 대나무에 미쳐서 별호가 죽광(竹狂)이라던 군수 때 담양군에서 야심찬 계획으로 거대한 대밭과 차밭을 함께 조성하여 대밭을 만들어가고 있는 이천골(二千骨) 골짜기에 대웅전은 없고 절벽의 아래에 야외법당이 있는 연등사라는 절이 있고 고려시대에 축조된 삼층석탑과 지장보살입상이 지방문화재로 보호받고 있을 뿐 어디를 둘러봐도 절의 형상을 하지 못한 모습에서 스님의 철저한 자연적 철학을 엿 볼 수가 있으며 부처님이 처음 설법을 할 때 노천에서 했으니 부처를 따라 행하고 자연의 훼손을 줄이고 그 속에서 옹골차게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고 몸소 실천하고 있는 절이라는 생각을 하며 남문을 향해 오르면 줄사철나무와 대나무가 가풀막을 오르는 수고를 덜어주고 여름이면 물봉선이 흐드러지게 피는 언덕에서 쉬기라도 하면 시원한 바람이 볼에 흐르는 땀을 식혀주기도 한다.

가마골이 있는 용추봉과 산성산의 물줄기와 강천산의 물이 합쳐 담양호를 이루고 있는데 주변경관이 너무나 아름다워 잠시 쉬고 있노라면 세상의 모든 근심과 걱정도 꽃바람에 실려 저만치 가버리는 상쾌함을 맛 볼 수가 있으며 담양호 밑에 송학민속박물관이 있어 농경시대의 역사와 유물을 볼 수가 있으며 체험도 할 수가 있고 시간이 허락한다면 가마골이 있는 야생화단지에서 용소의 시원함과 장쾌함도 함께 맛 본 다면 알찬 금성산성의 여행이 될 것이다.

우리 일행은 담양온천--보국문--충용문--불망비삼거리--약수터--505봉--암문--시루봉(525m)--동문--북바위(송대봉)--운대봉(586m)--연대봉(산성산603m)--북문--서문--철마봉(484m)--노적봉--내남문(충용문)--외남문(보국문)--담양온천방향--가풀막삼거리에서 오른쪽--나무농장(수목원)--담양관광호텔(총 11km 약 5시간)의 산행을 마치고 담양온천에서 시원하게 오늘의 여정을 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