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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서 蘭鳳 할아버지를 만나다.

깔크막 2013. 6. 11. 13:37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서 蘭鳳 할아버지를 만나다.

 

영국의 "찰스 젱스"라는 세계적인 정원 디자이너가 순천시의 풍경과 순천만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한 정원으로,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열리고 있는 공간 구역 중에서도 중심공간이라 할 수 있다.

호수공원을 이루고 있는 중심에 있는 봉화언덕은 도심에 자리 잡은 봉화산을 나타내며, 호수는 도심을, 호수에 가로로 설치되어있는 나무데크는 동천을 상징한다.

난봉언덕, 봉화언덕, 해룡언덕, 앵무언덕, 인제언덕은 순천 도심을 둘러싼 산의 명칭을 그대로 따 언덕이라고 표현했고 그 외 순천만언덕으로 구성되어있다.  

 

여섯 개 언덕 중에서 난봉언덕과 인제언덕은 난봉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언덕으로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을 갔을 때 옷깃을 여미고 난봉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후손에게 들려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난봉언덕은 서문으로 입장하여 갯지렁이가 다니는 길 근처에 있다.)

 

난봉산 난봉산성(鸞鳳山城)

 

난봉산성은 읍성에서 북쪽으로 약 2km지점인 매곡동 뒷산을 중심으로 약 700m에 걸친 산성이며, 매곡산성이라고도 한다.

이 산성은 당시 이 지역의 요새지로 인정되는데 지금도 산에 오르면 산성의 흔적을 볼 수 있다.

도성 북문 밖의 외곽방어를 맡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임진왜란 때의 전적지라고 전해오고 있다.

난봉산성에 대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옛 성터가 있다."고만 되어 있을 뿐 성의 규모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기록이 없다.

다만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는 성의 명칭이 매곡산성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성의 규모나 형식에 대해서 "높이 2~4간(間), 둘레 약 400간의 방형누지로서 난봉산의 남향으로 돌출한 일지맥(一支脈)의 산정에 위치하고 있는데,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임진왜란때 방어를 위해 쌓았다고 하나, 축성구조로 볼 때 삼국시대의 성으로 인정된다."고 조사되어 있다.

난봉산이란 이름은 박난봉 장군의 묘가 이 산의 동남쪽 기슭에 있어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묘소(墓所)와 난산재(鸞山齋)가 있다.)

박난봉은 순천 박씨 중시조인 박영규의 4대손으로 고려 정종때의 인물이며, 직위가 대장군에 이르러 사후에 평양(平陽 : 순천의 옛 이름)부원군으로 책봉되었다.(순천시청에서

전문 발췌함)

 

        

(난봉산 정상의 모습)                         (난봉언덕의 모습)

 

박난봉(朴蘭鳳)전설

 

박난봉 이야기는 박영규전설과 연결되어 전하며, 역시 역사적 인물의 신격화라는 신화적 구조를 취하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박난봉은 특출한 영웅의 자태로서 이곳의 군장이 되어서 인제산에서 마을 뒤편 진산에 이르기까지 성을 축조하고 그곳에 웅거하였다.

죽어서는 인제산의 산신이 되었다(『강남악부』. 14쪽)

이어 『강남악부』에는 인제산성에 대한 이야기와 박난봉이 아전 이환생의 꿈에 나타나 신당을 짓게 되는 이야기들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신당을 짓게 되기까지의 내력이 길게 기술되어 있다.

인제산성 안에는 정령이 있어 구름끼고 비오는 날에는 병사와 말의 행진 소리가 마을 골짜기를 진동하여 마을사람들이 무서워했다고 하며, 이환생을 통해 짓게 한 신당에 무당이나 승려가 머물지 못하고 떠나는 이유도 정령의 진동에 겁이 나서였다고 한다.

박난봉이 신비스러운 존재로 이야기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박난봉에 대한 구전은 지금도 몇 가지가 전한다.

"인제산에 용마발터가 있는데, 박장군이 탔던 말의 발자국이다."라든가, "박장군이 죽도봉에서 인제산까지 말을 타고 휘휘 날아다녔다." 등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그리고 다음에서는 박난봉을 보다 전설적 면모를 지닌 장수로 형상화하고 있다.

난리 때 장군이 지나갔는디, 장군이 탄 말이 상사면 저쪽으로 넘어 오는디, 이 마을에 들어와 갖고 그 말발떼죽이 여기 큰골 가면 하나 있었고, 이 회관 지은 지가 오륙 년 되었는디, 회관 짓기 전에 바로 화장실 곁에가 하나 있고, 그리고 거기 지내서 죽도봉 가면 하나가 시방도 있어요. 그런디 말이 죽도봉 건너가는디, 어린애들이 장난침스러 말을 건드러부러서 말이 인자 떨어져 죽었다.

그래갖고 장군님은 저리 박난봉이라고 금곡동 가면 있습니다.

거리 글로 들어가고, 그런디 감스로 벚꽃나무를 한 가지 끊어갖고 짝 꼽아놈서"요 나무가 살면 내가 산 줄 알고 죽으면 죽은지 알아라." 그랬는디, 살아갔거 시방도 살아 있다는 그런 유래가 있는디, 또 그래 가지고 계란을 놔둠시로"요 계란이 며칠 지낸 뒤 닭이 돼가지고 울 것이다. 울었으면 내가 살고 닭이 안 되면 내가 죽을 것이다." 그랬다는디, 지금도 말발떼죽 같은 것을 발견할 수 가 있어.(임성래. 「순천시의 구비문학」, 『순천시의 문화유적』 1992, 298~299쪽 전문 발췌)

 

순천박씨의 유래

 

순천박씨는 시조왕 혁거세(赫居世)의 30세손이요 신라 제54대 경명왕 의 일곱째아들인 강남대군(江南大君) 언지(彦智)의 아들 영규(英規)를 중조로 하고 있다.

그는 후백제 견훤(甄萱)의 사위로 훤장군이 되었으며, 고려 충혜왕 때 보문각 대제학, 관동존무사를 지낸 박숙정(朴淑貞)을 1세조로 하였다.

중조와 1세조 사이에 고려조에서 평양부원군에 봉해지고 죽어서 순천 인제산의 산신이 되었다는 박난봉 (朴蘭鳳)을 득관조로 하였는데, <여지승람(輿地勝覽)>에는 <난봉이 영규의 증손이요, 숙정의 6대조다>하였으나 <순천박씨세보(順天朴氏世譜)>에는 세계를 알 수 없다고 하였다.

본관은 중조 영규의 아버지인 언지가 봉군된 강남(江南)이 순천의 형승(形勝)을 가리키는 것이고, 또 중조의 발상지인 순천이 신라 때 승평(昇平), 고려조에 승주(昇州)로 부르다 충선왕 때 순천으로 개칭되었기 때문에 순천으로 하였다.

 

순천박씨 시조(始祖) 대광공(大匡公)

 

휘,영규(諱,英規)

 

후백제의 장군으로 휘(諱)는 영규(英規).

본관은 순천(順天). 견훤(甄萱)의 사위이다.

견훤을 좇아 후백제 건설과 발전에 공훈을 세웠으며 뒤에 고려삼한통합익찬공신(高麗三韓統合翊贊功臣)으로 삼중대광(三重大匡)이 되었다.

고려사열전(高麗史列傳) 제신편(諸臣編)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이 되어 있다.

박영규(朴英規)는 승주인(昇州人)이니 견훤(甄萱)의 딸을 아내로 삼았다.

배위는 완산(完山) 견(甄)씨이며 2남 3녀를 두었으며 2남은 부전(不傳)되고 공의 세 딸은 고려태조 왕건의 부인인 동산원부인(東山院夫人)과 고려 제3대왕인 정종의 비인 문공왕후(文恭王后)와 문성왕후(文成王后)이다.

 

정승공(政丞公) 중흥조(中興祖)

 

휘,난봉(諱,蘭鳳)

휘(諱)는 난봉(蘭鳳)이며 고려말(高麗末) 충열왕조(忠烈王朝)에서 대장군(大將軍)을 지냈으며 정승(政丞)에 이르렀고 평양군(平陽君)에 봉군(封君)되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서는 공이 사후(死後)에 인제산신(麟蹄山神)이 되었다고 한다.

을유보.니성보(乙酉譜.尼城譜)에서는 정승공의 배위는 문화유씨(文化柳氏) 라고 하였으나 문화유씨의 족보(族譜)나 구보(舊譜)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묘소(墓所)는 순천(順天)에 있고 그곳에 난산재(鸞山齋)가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40권을 보면(참고용)

 

인제산(麟蹄山) : 부의 남쪽 4리에 있는 진산(鎭山)이다. 일명 건달산(建達山)이라 하며 옛 성터가 있다.

조계산(曺溪山) : 부의 서쪽 80리에 있다.

계족산(鷄足山) : 부의 북쪽 45리에 있다.

난봉산(鸞鳳山) : 부의 서쪽 4리에 있는데 옛 성터가 있다.

원산(圓山) : 부의 북쪽 6리에 있으며, 삼봉(三峯)이 있다.

모후산(母后山) : 부유현(富有縣)에 있다. 또 동복현(同福縣)편 에도 보인다.

송광산(松廣山) : 부유현(富有縣) 서쪽에 있다.

진례산(進禮山) : 부의 동쪽 73리에 있다.

해룡산(海龍山) : 부의 남쪽 10리에 있다.

구현(鳩峴) : 부의 북쪽 30리에 있다.

미초률령(未草栗嶺) : 부의 북쪽 40리에 있는데 지형이 험한 요새지(要塞地)이다.

바다 : 부의 동남쪽 10리에 있다.

백야곶(白也串) : 부의 동쪽 60리에 있으니 둘레가 1백 15리인데 목장(牧場)이 있다.

낙수진(洛水津) : 부의 서쪽 70리에 있다.

잔수진(潺水津) : 부의 북쪽 60리 남원부(南原府) 유곡(楡谷) 경계에 있는데 요새지(要塞地)이다.

압록진(鴨綠津)에서 동쪽으로 흘러 섬진강(蟾津江)으로 들어간다.

광탄(廣灘) : 근원이 둘 있으니 하나는 미초률령(未草栗嶺)에서 나오고, 하나는 구현(鳩峴)에서 나와 원산(圓山) 북쪽에서 합하고, 부의 동쪽 1리에 이르러 옥천(玉川)과 합하여 동쪽으로 흘러 용두포(龍頭浦)가 되었다.

옥천(玉川) : 성 남쪽 문 밖에 있으니 난봉산(鸞鳳山) 서쪽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