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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재(遜齋) 박광일(朴光一)선생과 팔송정(八松亭)

깔크막 2012. 6. 27. 13:40

 

손재(遜齋) 박광일(朴光一)선생과 팔송정(八松亭) 

 

팔송정(八松亭)은 “토지면 문수리 죽천(竹川)에 있고 손재(遜齋) 박광일(朴光一)선생이 고천익(高天翼)선생과 더불어 여기에서 강학(講學)하였다. 사자항(獅子項)에 손재천(遜齋泉)이 있으니 공(公)이 남긴 터라고 한다.“라고 구례군청에서는 기록하고 있다.

구례군청의 기록에는 팔송정은 현존하지 않으며 건립연대도 미상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다른 기록을 인용하면 손재공 박광일선생이 “1705년 모친상을 치른 후 지리산 문수동(智異山文殊洞)에 들어가 살 때 선생의 선성(先聲 )을 듣고 찾아오는 문인 학자들과 강론(講論)으로 4년을 보내다가 수토(水土)가 맞지 않아 가족과 함께 돌아왔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1705년에서 1709년 사이에 건립 된 것으로 본다.

팔송정의 기록에서 보듯이 “사자항(獅子項)에 손재천(遜齋泉)이 있으니 공(公)이 남긴 터”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이곳이 손재공의 집터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사자항(獅子項)이란 “목(目)“을 말하고 언덕이나 고개(峙)를 뜻하는 것으로 다음의 시에서 사자목(獅子目) 즉 사자항(獅子項)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向大路百餘步。高巖挾路。僅通二人行。謂之獅子項。踰項出大路。有女妓潭。

향대로백여보。고암협로。근통이인행。위지사자항。유항출대로。유여기담。 

 

큰길을 향하여 백여보 남짓 이르니

높은 바위 사이로 좁다란 길이 이어지는데,

겨우 사람 2명 정도 지나갈만하며

이를 사자목(獅子項)이라 한다.

목을 넘는 큰 길에

여기담(女妓潭)이 있다. 

 

이 시에서 보듯이 사자항(獅子項)이란 “높은 바위 사이로 좁다란 길이 이어지는데, 겨우 사람 2명 정도 지나갈만한 길목”을 사자항(獅子項)이라고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지금은 잘 쓰지 않는 표현이라 옛 시를 인용하여 설명 하였으며 선생이 “지리산 문수동(智異山文殊洞)”에 살았다고 했는데 동(洞)을 해석하면 보통 마을이나 고을을 뜻하지만 산과 산의 사이에 펼쳐진 골짜기를 골 또는 골짜기 계곡, 바위와 바위 사이로 사람들이 제법 앉을 만 한 공간으로 사람이 살지는 않으나 사람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곳을 말 할 때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선생은 문수골(洞)로 넘어가는 사자고개(獅子項)에 살지 않았을까?.한다.

구례군청의 기록에서 보면 “팔송정(八松亭)은 “토지면 문수리 죽천(竹川)에 있고,”라고 했는데 현지 명에는 죽천이라는 마을은 없다.

구례군청의 기록에서 팔송정이 있었다는 문수리에서 대나무가 많고 마을의 중간에 있다하여 중대라고 부르는 마을이 있으며, 상죽(上竹)은 웃대내라고 했는데, 오미리(五美理)에 하죽(下竹), 내죽마을의 윗동네라하여 웃대내라고 하였다는 마을 유래가 전해지고는 있으나 선생이 문수동의 죽천(竹川)에 살았다는 기록은 없다.

그러나 1500년 전에 마을이 형성되었다는 토지면 오미(五美)리 내죽 마을의 유래를 살펴보면 월명산, 방방산, 오봉산, 계족산, 섬진강의 다섯가지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어 오미리(五美理)라고 부르게 되었고 오미, 하죽, 내죽마을로 구성되어있다.

오미마을에는 그 유명한 운조루가 있고 내죽마을에는 마을 형성 당시에 심었다는 커다란 당산나무가 있으며, 대나무가 울창(울창)하여 대(竹)와 문수천의 시내(川)을 따서 “대내(竹川)”라고 불렀다는 설과 文殊川의 물을 논(沓)으로 인수(引水)하기 위해 보(저수지)를 만드는데, 보의 입구가 암석이 누침되어 보구를 뚫을 수 없었으나 하루 밤을 자고 나니 죽순(竹筍)이 암석 사이에서 올라오면서 뚫어졌다하여 “대내(竹川)”이라 칭했다는 설이 존재한다.

실제로 “대내”에서 문수리로 넘어가는 길목에 토지천의 물을 담은 문수저수지가 있으며 마을길의 이름이 모두 “대내길”이며 이 길을 지나면 문수길로 이어진다.

지금의 이름은 뒷산의 대밭골을 중심으로 안쪽에 있다하여 “안내”라고 부르다가 1914년에 내죽으로 개칭되었으며 원래는 “오동”이라 부르며 내죽, 하죽, 백동, 추동, 한동마을로 이루어졌다.

문수리와 인접해 있어 팔송정이 문수리 죽천에 있었다는 기록은 내죽마을의 유래에서 보면 지금의 내죽마을에 있었다고 하여야 옳으나 기록에 없는 기록이 있었는지 몰라 조만간에 기록을 바탕으로 답사를 해야 하겠다.

선생이 “대내(竹川)에 살았다는 기록과 함께 사자항(獅子項)이 대내(竹川)에서 문수골(洞)로 넘어가는 고개로 고개를 넘기 전에 손재천(遜齋泉)이 실존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더해본다. 

 

당시 지리산에 은거하며 살았던 선생의 마음이 잘 담긴 시 한 수를 더해본다. 

 

元來經渭不同源 원래경수불동원 원래가 경수(涇水)와 위수(渭水)는 근원이 같지 않은데

淸濁何言本一原 청탁가언본일원 어찌 맑음과 흐림이 근원이 같을 손가.

秦地風塵雲有影 진지풍진운유경 진나라 땅에 풍진(風塵)이 있어도 구름은 그림자가 있고

商山氷雪月無痕 상산빙설월무흔 상산 땅에 얼음과 눈이 얼어 붙으니 달빛이 간곳없네.

潛龍自是承天意 잠룡백시승천의 잠룡(潛龍)은 보시 하늘 뜻을 이어 받았는데.

跡丞焉能感主恩 적승언능감주은 못된 곰이 어찌 임금의 은총을 느끼겠는가.

此義於今誰與自 차의어금수여자 이 뜻을 지금 누구와 함께 의논할 거나?

離騷吟罷羅寒門 이소음태나한문 이소경(離騷經)을 읽다 창문을 닫아 버렸다.

 

 

참조, 인용 또는 발췌:

1.구례군청 마을 유래와 전설

2.blog.naver.com/fort40/40161828204

3.blog.daum.net/hann104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