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깔크막의 풀 나무 이야기

자두나무 이야기

깔크막 2010. 1. 18. 16:43

자두나무 이야기

 

장미과(薔薇科 Rosaceae)에 속하는낙엽활엽소교목으로 중국 원산이며 키는 10m까지 자라고  어린가지는 적갈색이고 윤기가 있으며, 줄기는 여러 갈래로 갈라져서 퍼지듯 자라고 수피는 회갈색이다.

잎은 어긋나기하며 거꾸로 세운 달걀모양으로 급한 점첨두, 예저이고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으며,  4월에 피는  백색 꽃은 잎보다 먼저 피며 보통 3개씩 모여 달린다.

열매는 둥글고 밑부분이 움푹 들어가며 7월에 빨강색이나 진한 자주색으로 익고 과육은 연한 노랑색이며 안쪽의 단단한 핵(核 씨)은 겉이 매우 거칠고 움푹움푹 패여있다.

열매를 부르는 이름인 자두는 자도(紫桃)라고도 부르는데 과일의 색이 자주색이고 모양이 복숭아와 비슷하게 생긴 이름으로 우리말 이름은 오얏나무이고 한자로는 오얏 이(李)이라고 표기한다. 

보통 과수로 재배되었는데 재래종의 열매는 그 크기가 작고 맛도 시기 때문에 과일 나무로 재배하지는 않았고 정원수로 심어 꽃과 열매를 감상하는 관상수로 심었거나 독립수로 심어 차폐용이나 경계수로 심었다.

재래종 자두나무는 품종을 개량하였고 외국에서 상품성이 뛰어난 자두나무를 수입하여 우리의 토양에 맞도록품종을 개량하여 과수로 재배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요즘은 과일의 맛과 향이 매우 뛰어나고 색상이 검은빛에 가까운 검자주색을 띠는 것고 있고 과육의 색상도 검붉은 것이 있을 정도로 자두나무의 종류는 다양해졌으나 과일이 상품성 떨어지고 시고 맛이 없었던  

재래종은 드물게 되었으나 알려진 것으로는 경남 합천군 가야면 매안리에 높이 13m의 300년 된 오얏나무가 자라고 있다.

자두나무는 양지바르고 배수와 통풍이 잘되고 화강암계, 현무암계, 변성퇴적암계, 등의 토질에서 잘 자라며 내한성은 강하나 내건성과 염분에 약하고 대기오염에 대한 저항성은 보통이나 한적한 시골도로의 가로수는 물론 도로변에 심어 차폐용으로는 재래종 자두나무가 괞찮은 편이다. 
자두열매에 들어있는 주요성분으로는 바닐린, 시린갈데히드, 코니페랄데히드, 시나팔데히드 등이 함유되어 있으며, 열매는 식용하고 과육을 제거한 씨를 건조하여 이뇨제로 사용하고 열매는 꿀에 재었다 먹기도 하고 말려서 건과를 만들기도 하는데 이것을 이건(李乾)이라 하는데 이때 씨라고 불리는 부분을 빼고 말린다.

열매는 생식을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잼이나 파이를 만들기도하고 한방에서는 과실은 李子, 뿌리는 李根, 수지는 李樹膠(이수교), 잎은 李樹葉, 종자는 李核仁(이핵인)이라 하여 약용한다. 

이 종과 비슷한 식물로는 재배하는 매실나무(P. mume)· 살구나무(P. armeniaca var. ansu)· 복사나무(P. persica), 산지에서 자라는 개살구나무(P. mandshurica var. glabra) 등이 있으며, 같은 종류의 나무로는 서양자두나무(P. domestica)가 있다.

보통 남부지방에서는 자두가 익는 시기에 태풍이 불고 장마가 계속되는 시기와 거의 일치하기 때문에 집 안에 한 두그루 정도 심어 놓고 열매를 먹게 되는데 욕심을 부려 혼자만 먹겠다고 하였다가는 다 먹지도 못하고 땅바닥에 우수수 떨어져버리고 지루한 장마라도 시작하게 되면 당도가 떨어져 맛이 없고 쉽게 물러지고 나무에서 쉽게 꼭지가 빠져 땅에 떨어지면 썩어버리기 때문에 이웃과 무조건 나누어 먹는 것이 인심도 얻고 열심히 열매를 맺고 알맞게 익어준 자두나무에게 미안해 하지 않는 방법이 된다.

이처럼 자두나무는 농가에서 재배하는 과일로 수확기가 장마와 겹칠때는 손해도 많이 주지만 장마만 피해가면 쏠쏠하게 이익으로 돌려주는 과일나무가 아닌가 한다.

 

자두나무는 재배역사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신라 때 벌써 가꾸었음을 여러 문헌을 통해서 알 수가 있고  
신라 말 풍수의 대가 도선(道詵)이 쓴 비기(秘記)에 “고려의 왕(王)씨에 이어 이(李)씨가 한양에 도읍 한다.(繼王者李而都於漢陽)” 고 예언하자 고려 중엽 고려 왕조는 한양에 벌리목사(伐李牧使)를 두어 백악(白岳 지금의 북한산)에 오얏나무를 심고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면 모두 찍어서 이(李)씨의 기운을 눌렀다.
500년 전에 이(李)씨 왕이 새로운 나라를 세운다는 도선국사(道詵國師)의 예언이 무학대사(無學大師)에 의해 실현되게 되는데 무학이 도읍지를 정하려고 만경대의 맥을 밟아 남으로 가다가 비봉에 이르러 “무학은 이 곳에 잘못 이르렀다(無學誤尋到此)”라는 도선의 비석을 발견하게 되고 무학은 길을 잘못 잡았음을 알고 그 길을 되돌아가 만경대의 정남맥을 따라 바로 백악에 이르니 삼맥이 합하여 한 덩어리가 되는 천하의 명당이라 그곳을 궁터로  잡게 되었다.
그곳은 고려 왕(王씨)조의 무궁한 번성을 위한 한가지의 수단으로 선택하여 오얏나무를 심어 가꾸면서 잘 자라면 찍어내면서까지 왕이 될만한 이(李)씨가 왕기를 받지 탄생하지 못하도록 찍어내기를 반복하였던 자리(伐李址)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고려 왕조는 해마다 자두나무를 찍으면서까지 이씨의 기를 눌러보았으나 결국 나라를 이씨에게 내주면서 탄생한 나라가 바로 조선이다.
오얏나무에 얽킨 이야기가 있는데, 조선의 문장은 오얏꽃(李花)이었으며, 창덕궁(昌德宮)과 인정전(仁政殿)은 대한제국 시절 황제가 외국 사신을 접견했던 건물이었는데, 이 건물들의 용마루에는 조선 황실의 문장인 청동제 자두꽃 다섯 송이가 박혀 있으며 넷은 왕을 말함이고 다섯은 황제를 상징한다. 
인정전의 오얏꽃을 일본을 상징하는 벚꽃이라 하여 철거해야 한다고 설전을 벌인 적도 있었으며,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조선 황실의 문장을 배꽃(梨花)이나 벚꽃으로 잘못 알 수가 있는데 발음이 같은 이화(李花)를 이화(梨花)로 착각한 때문이고 꽃의 모양을 보고 벚꽃으로 잘못 알았기 때문이다.
시인 묵객으로부터 시의 소재로 이용되기도 했는데 이인로나 고려 명종 때의 학자이자 농민시인인  노봉(老峰) 김극기(金克己)는 오얏을 보고  "꽃을 향한 마음은 은혜로운 바람에 놀라고,  새 소리에 온화한 기운을 느낀다. 붉은 빛은 복숭아를 붉게 물들이고,  희디 흰 빛은 닦은 오얏을 찾는다."라는 시를 남겼으며, 교육을 맞고 있는 사람들은  교훈적인 글로 "이하부정관(李下不正冠)"은 오얏나무 밑에서는 갓 끈을 고쳐 쓰면 쓸데없이 오해를 받기 쉬우니 아예 하지 말라"는   문선()의 군자행()에 나오고,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의  형태로 쓰여지고 있는데 오이밭에서는 신발끈을 고쳐 신지 말고 오얏나무 밑에서는 갓끈을 고쳐 쓰지 말라는 교훈적인 의미가 담긴 글이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과일나무 가지에 돌을 끼워두면 과일이 많이 열린다고 했으며 이것을  과일나무 시집보내기(嫁樹)’라 한다고 했으며, 과일나무 시집보내기는 섣달 그믐날, 설날, 정월 보름 어느 때 해도 좋다.”고 적었다.

화력신재(花曆新栽)에도 “섣달 그믐날 장대로 오얏나무 가지를 때리면 결실이 좋다고 했고 서광계(徐光啓)의 농정전서(農政全書)에는 “오직 오얏나무에만 이 방법을 쓴다.” 고 했다. 

 

(일부 자료 출처:박상진교수의 자두나무 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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