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이야기
대나무는 벼와 같은 화본과로 왕대 솜대 오죽 해장죽 맹종죽 조릿대 이대등이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크게는 약 5종이 있고 세계적으로는 약 1300여종이 있으며, 조릿대에는 제주조릿대와 고려조릿대 등이 있으며 대나무의 구별법으로는 솜대(분죽)는 잎자루에 예각의 견모가 있으며 가을에 떨어져 없는 경우도 있으며, 마디와 마디는 2륜으로 위 아래가 비슷하고 담록색의 흰가루가 묻어 있고 죽순 끝에는 연갈색 털이 있으며, 죽순의 맛이 제일 좋다.
반면에 왕대는 잎자루에 직각의 견모가 있으며, 2륜 중 위의 륜이 약간 도드라지고 죽순은 히끗히끗하고 충청 이남에서는 20m 이상으로 크고 굵게 자라나 추운 지방에서는 겨우 2~3m 밖에 자라자 못한다.
맹종죽은 죽순을 먹는 식용 대나무이며 마디와 마디사이가 1륜으로 되어 있으며, 첫 가지에서 2륜이 나오는 경우도 있으며 대나무 줄기는 청록색이고 대에 흰가루가 묻어 있는 것 처럼 보이고 죽순은 거무티티하고 죽순의 향은 매우 좋다.
이대는 키가 2~3m로 작고 지름도 커 봐야 겨우 1cm 정도 밖에 되지 않으며 1년 차 가지 끝에는 4~6개의 잎이 모여나고 죽순은 지면과 직각으로 나오고 마디는 평평하다.
조릿대는 1년차 가지 끝에 잎이 2~3장이 모여 나고 키는 1~1.5m 정도로 작고 갸름하고 마디는 약간 굵으며, 죽순은 45도로 나오고 2년차의 가지에서는 4번째 마디에서 보통 잎집 모양의 잎이 벗겨지고 잎 양면에는 털이 없으며 뒷면 밑 부분에는 털이 있고 가장자리에 톱니같은 잔 톱니가 있으며, 잎집에도 털이 있다.
대나무의 사용 용도를 보면 솜대(분죽)는 강도와 탄성이 다른 대나무 보다 강하여 주로 생활도구를 만들고 왕대는 솜대 보다는 약하여 바구니나 바구니의 테두리를 만들고 조릿대는 쌀을 씻는 조리를 만드는데 사용되었기 때문에 조릿대란 이름이 붙었으며, 면역강화제 암이나 당뇨치료제등의 약용으로 먾이 사용되고 있으며 이대는 남쪽에서는 보통 신이대라고 부르며 화살대를 만들었고 맹종죽은 보통 식용으로 사용한다.
대나무는 다른 나무와 다르게 대나무가 전부 죽어버리는 개화병이 있는데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주기설로 솜대는 60년 정도 왕대는 120년 마다 개화병이 발생한다고 하고
기상설로는 고온과 건조가 원인이라고 하며 영양부족이 되 대부분 100년에 한 번 쯤 대나무가 꽃을 피우며 전체가 죽어버린다는 영양설이 있다.
그러나 대나무는 어떠한 경우에든지 지면 상단의 모든 전체는 죽어버리지만 뿌리가 살아 있어 4~5년이 지나면 원래의 대밭의 모습으로 되 돌아온다.
대나무가 많은 남부지방에서는 대나무와 사람의 생활과는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소나무가 우리 민족과의 미럽한 관계를 갖고 있다면 남부지방에서는 아마 대나무와 더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프라스틱이라는 문명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대나무도 쇠락의 길을 걸으며 애물단지로 변해 버리기도 했으나 담양과 하동 울산에서는 대나무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면서 다시 대나무의 중요성과 이용방법이 달라지기는 했으나 사람의 품으로 돌아 올수 있었다.
대나무는 전쟁의 도구로도 사용되었는데 화살대나 죽창 죽검을 만들었고 전시에는 적을 염탐 할 때 사용되는 연을 만들었으며 동학란이 있을 때는 총탄과 화살을 피하기 위해 닭이나 동물을 가두는 장태에 짚으로 만든 가마니를 넣고 그 속에 사람이 들어가 적진으로 뛰어드는 백병전을 감행 할 때 실제로 사용되었으며 총탄이나 화살을 피하기 위해 대 밭에 숨기도 했다.
대나무는 음악의 발달과 악기의 발달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대나무로 단소 통소 해금 피리 대금등을 만들어 우리가락을 연주하는데 사용하였고 호신용으로 통소 속에 칼을 숨겨 죽검으로도 사용하였다.
절에서는 대나무를 심어 동물의 침입을 막고 차가운 북풍을 막았고 죽순을 이용하였으며 대나무로 스님의 의복을 염색하기 위해서 일부러 심었으며, 대나무의 생태상 수분이 많고 비가 많이 오는 곳에서 잘 자라는 특성과 뿌리의 얽킴이 매우 좋아 강변의 둑에 심어 수해를 방지하며 사방용으로 심었으며 지금도 담양의 습지가 있는 영산강 상류에는 대밭이 강변을 따라 즐비하다.
오락용품으로도 사용되었는데 어린이들이 가지고 노는 놀이기구로 물총 딱총 스키 썰매 죽마 투호 등이 있었으며 문화예술품으로는 각종 공예품 예술품 시나 그림의 소재등으로 각광을 받았는데 특히 조선시대의 지리한 당파 싸움이 계속 될 때 대나무가 그림의 소재로 활용되어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는 그림을 그렸고 요즘은 달집을 태우기 등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솟대 만장 죽상마 지팡이 등의 장례문화에도 사용되고 있고 무당 결혼에도 사용되고 농업용 도구로는 도리깨 동물의 우리 고기 잡는 발 땟목 작살 심지어는 가물치를 잡는 용도로도 사용하였다.
이밖에도 죽석 죽장 삿갓 석작 바구니 채반을 만드어 생활도구로 사용하였고 부채 대발 죽부인으로 만들어 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보냈고 요즘에는 공예품 예술품 분재 대통밥 대통주 대나무구이발 간장이나 동치미 하수처리정화용품 죽초액 숯 화장품 종이 차 인테리어 밥 등으로 사용범위를 아주 폭 넓게 사용되고 있으며,이밖에도 폭죽 죽비 죽염 붓 죽간등으로도 사용되었다.
죽림처사 죽림칠현 정송오죽 죽계육일 파죽지세 백척간두 우후죽순 세한고절과 같은 사자성어는 물론 속담도 많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며, 우리가 가장 잘 아는 대나무에 가지 째 붙혀 타고 온 동네 고샅을 누볐던 죽마고우(죽마지우)도 모두 대나무에서 나온 말이다.
또한 대나무의 껍질인 죽여는 백색포도상구균 고초열균 대장균 티푸스균에 강력한 억제작용이 있으며, 폐열로 인한 해수와 가래 담열로 인해 잠 못 이루고 구토를 하는데 사용하며 구토 딸꾹질 신경성구토 급성이질 안면신경염 구강염에도 효과가 뚜fut하며 죽엽은 심열 위열 심화로 인하여 소변이 붉게 나오는 증상에 유효하고 죽력은 가래 천식 해수 갈증 혈압강하 당뇨에도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대나무는 우리 생활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도 너무 많고 시 시조 그림 음악 등으로 우리와의 관계를 깊이하고 있다.
조선시대 때 자의가 되었든 타의가 되었든 벼슬이 싫어 대밭으로 숨은 학자들을 죽림처사라고 했으며 대나무를 차군으로 의인화하기도 했다.
대나무가 풀이냐 나무냐는 고산 윤선도의 오우가에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라며 정확하게 표현을 했는데 나무는 형성층이 없어 줄기는 한 번 커지면 더 이상 커지지 못하여 풀이라는 해석이 있으나 산림청에서는 그 쓰임새가 많아 나무라고 하기로 했다.
또한 대나무는 줄기와 키가 다 자라는데 60일 정도 밖에 걸리지 않으며 가지는 매 년 자라고 있으며, 대나무와 차나무가 동시에 자라는 곳의 차를 죽로차라 부르고 품질은 최고로 쳐 조선시대 때는 왕에게 진상하기도 했다.
대나무와 차나무가 동시에 살 수 있는 이유는 생태적으로 대나무는 지면에서 60cm 정도의 깊이까지만 뿌리를 내고 수평으로 자라지만 차나무는 수직근이 발달하여 대나무 뿌리가 있는 층을 통과하여 자라기 때문에 함께 잘 자랄 수가 있다.
식물 중에서 이야기거리가 제일 많은 나무가 제일은 대나무요 둘째는 차나무가 아닐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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