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농사는 집에서 천직으로 알고 지어 온 농사로 어버지가 살아 계실 때 부터 일손을 거들다보니 자연스럽게 농사를 조금 안다고 티내고는 했는데 막상 아버지가 돌아 가시자 아는 것 보다는 모르는 것이 더 많았으며 벼농사에 관한 서적을 읽고 있노라면 용어를 몰라 국어사전을 뒤적거리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고 본다.
물론 현재의 직업은 조그만 회사에서 기술직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벼농사와 콩농사를 겸업으로 하고 있으나 노력한 것에 비하면 그 수익은 언제나 내가 먹을 양식과 왕겨 정도 밖에 되지 않으나 벼농사를 그만 두지 못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
나에게는 농사꾼의 피가 흐르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고등학교 시절에도 틈만 나면 농사일을 거들었으나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서울에서 생활하다보니 농사일은 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틈만나면 농사에 관한 서적을 탐독하고 시간이 맞으면 전국이 어디든지간에 독농가를 찾아가 모르는 것과 의심나는 것을 물어보는 열성을 가지고 있었고 군에 복무 할 때는 한우사육 서적으로 육성우와 비육우를 철저하게 공부하였으나 아직도 한우를 키우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 하고 있다.
직장생활에 염증을 느끼면서 괜히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장거리 출퇴근을 빙자하여 잘 다니던 좋은 직장을 그만 두고 모방송국의 영상물을 판매하게 해 준다는 달콤 쌉싸름한 언질에 사표를 내 던지고(1992년) 비디오 대여점을 시작하였으나 막차를 탄 관계도 있지만 남에게 아쉬운 소리도 못하는 성격 탓에 3년만에 손해를 보면서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나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농사 짓는 일 밖에 없었다.
그동안에 벼농사 포도농사 한우사육 버섯재배에 대하여서는 나름데로의 기본적인 농사방법을 안다며 자신있게 포도농사에 뛰어 들면서 한계를 느끼기를 수도 없이 했으나 주위의 독농가가 있어 많은 도움을 받을 수가 있었고 혹시라도 독농가도 잘 모르는 상황이 발생하면 고서농협조합장(당시)을 찾아 가기도 했고 포도잎을 들고 담양농업기술센타까지 달려가면 원인을 분석하고 처방까지 확실하게 해주었으며 농업기술센타에서는 담양과 가깝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관할시군이 아님에도 친절하게 방문하여 포도농사의 비법을 전수해 주기도 했다.
3년의 포도농사가 초보농사꾼의 실력으로 보아서는 성공을 거두었던 이유는 끈길지게 책과 농협과 농촌진흥원에서 발행된 신기술과 재배기술을 인터넷은 물론 수원(농협.진흥원)에서 지역 농업기술센타에서 재배기술과정을 이수하고 실제 포도농사를 지으면서 나름데로 접목을 시도하니 포도라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으나 3년 농사기간 동안 태풍이 해 년마다 비닐하우스 대형 2동의 비닐을 통 째로 날려버려 결국은 상당한 손해를 보고 실농하고 말았다.
농사는 자신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자연에 순응하여 피해를 줄이는 기술도 농업기술에 해당 한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끼면서 포도농사를 하는 도중에 관할관청에서 시행하는 농업기술교육으로 버섯을 택하고 열심히 배웠으나 결국 버섯농사는 시작도 못해보고 포기하고 말았다.
하남농협에서 교육비를 지불해 주어 금전적인 부담은 없었고 심지어는 버섯재배의 백과사전 격인 책과 병충해도감까지 지원해 주며 독려하여 주었으나 시도도 하지 못하고 버섯농사는 접고 말았다.
이쯤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툭하면 "애이.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지을까?."라며 투덜댔던 옛 직장 동료의 얼굴이 주마등 처럼 스쳐가는 이유는 직장생활 보다 농사가 훨씬 어렵고 힘든 노동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철저하게 준비했으나 결국 첫 농사에 실패를 한 나를 보면 내가 쏟은 노력에 비하면 허무했으며 물론 포도농사 같은 경우는 실패의 원인이 자연의 변화였으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으면 그만 이지만 자연에 순응하지 못한 책임은 오롯이 나에게 있었다는 것을 아는데는 이미 3번의 실수를 한 뒤였으니 그만큼 혹독한 댓가를 지불하였다라고 볼 수가 있으며 다행히도 포도농사는 소비자에게 맛으로 승부한 결과 호평 속에 생산지에서 모두 판매하는데 10일도 안 걸렸으니 이만하면 포도농사 하나는 기막히게 지었다라고 볼 수도 있으나(당시에 무농약 재배)자연을 알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고 포도농사를 접고 말았다.
농업진흥청과 기술센타에서 당신은 농사를 지으면 안된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실험정신이 너무 강하니 조금만 줄이던지 농사를 짓지 말던지 만약에 돈이 넘치면 농사를 계속 지어도 된다는 말의 뜻을 아는데도 많은 시간이 지난 뒤에야 깨닫게 되었다.
혹시라도 귀농을 준비하고 계신분이 이글을 읽는다면 철저하게 재배기술은 물론 판매기술 저장기술은 기본으로 빈틈없이 준비해야하고 최소한 천문학 비료학 농화학 토양학등도 알아야 농사의 기본을 익혔다고 할 것이다.
또한 손익을 계산하여 직장생할 정도의 월급이나 연봉을 생각하고 있다면 귀농은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금 한 푼 안 들고 월급이나 연봉을 받는 것이 농사지은 총매출에서 순수익을 따지면 엄청난 대농이나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하고 직장생활에서는 혹시라도 한번 실패하면 기껏해야 감봉을 받으면 그만이지만 농사에서 한번 실패는 결국 일년농사를 실패를 한 것이나 다름이 없으나 다행히 일년에 이모작을 한다해도 6개월분을 실농한 것이며 투자자본은 전혀 회수 할 벙법이 없음으로 고스란이 빚으로 남게 되므로 농사는 쉬운 생활이 아니다.
물론 어떤 농사를 짓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겠지만 수익성이 높은 농사에는 높은 자본의 투자와 위험도가 도사리고 있으며 그나마 쉬운 보리 콩 밀 벼농사 등은 수익성이 떨어지나 생활에 자유스럽과 비라도 오면 쉴 수 있는 시간이 있으나 나열한 농사에서 월급이나 연봉을 맞추기는 거의 어려울 것이다.
대농이라면 가능하지만 산술적으로 귀농하면서 대농은 토지구입에 막대한 자본이 투자되므로 왠만한 자본가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나와 같은 경우에도 포도농사를 지으면서 (귀농자는 아님)하우스 대형 2동을 임대하였을 당시에는 포도나무가 4년생이었으나 심고 거의 관리가 되지 않아 첫해에는 2000kg 밖에 수확하지 못했으나 주변의 엄청난 도움으로 수확 즉시 주문판매로 팔았으며 10kg 상자에 평균 23,000원을 받았으나 투자한 자본과 노력에 비하면 실패나 다름이 없었고 다음 해에는 40,000kg 생산에 10kg 상자 당 25,000원을 받았으나 태풍으로 하우스의 비닐을 다시 설치해야 했으므로 결국은 크게 손해 보고 말았다.(영농일지는 철저하게 자세하게 써야함)
3년 째 되던 해는 45,000kg을 생산하여 평균가격으로 23,000원 정도를 받았으나 임대를 주었던 주인이 하우스를 되돌려 줄 것을 요구하여 법적인 대응까지 하려고 했으나 넘겨주고 나니 가격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잘 받고 팔았으나 정산을 해 보면 결국은 큰 손해를 보고 말았다.(무가운 하우스 였음 1995년)
손해를 본 이유로는 태풍이 주요원인으로 작용했지만 폐농한 포도나무를 정상적인 수확이 가능하도록 만드느데 투자자본이 많이 들어갔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고 주인의 조기에 포도밭을 되돌려 달라고 했기 때문에 투자 손실은 더 커지고 말았다.
혹시라도 귀농을 하거나 임차로 농사를 지을 때는 어떠한 경우라도 임대차계약서를 꼭 써야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법적으로 대응이 가능하니 꼭 임대차계약서를 써야 한다.
나와 같은 경우에도 한 집처럼 지내는 친구(35년지기)의 직장 상사가 소유한 포도밭을 시중보다 훨씬 싼 임대료를 지불하기로 하고(당시 1,000.000원) 임대했으며 당시에는 짓기 싫을 때까지 관리해준다는 생각으로 지으면 된다는 말에 농사를 준비하면서 귀가 따갑게 들었던 임대차계약서를 그래도 써야 한다고 했으나 그런것은 써 뭣하냐며 그냥 지으라는 말을 믿고 꺼림칙했지만 사람이 좋아보여 농사를 짓기 시작했으나 다 망가진 포도밭을 정상으로 복원하여 정상으로 수확이 가능하니(4년생 나무를 3년 관리하여) 되돌려주라는데 친구가 난처해 질까봐 울며겨자 먹기로 손해를 감수하기로 마음을 먹고 되돌려주니 억울하기가 그지 없었다.
포도농사를 그만 두면서도 한가지 크게 얻었던 것이 있었다면 정직하게 농사를 지으면 소비자가 더 먼저 안다는 것을 알았고 심지어는 소비자가 직접 방문하여 몇 상자를 사 가면서 무농약 또는 일부 포도농가의 포도를 먹으면 입술이 매우 가려운데 내가 지은 포도를 먹으면 입술이 간지럽지 않는 것은 왜냐고 묻기도 했다.
소비자는 정직한 농사꾼의 농산물은 절대 외면하지 않으며 한 번 맺은 소비자의 신뢰는 또 다른 소비자를 데리고 다니므로 3년 째 되던 해에는 일주일 만에 그것도 억수같은 장마가 계속되는 가운데 판매하여 미쳐 구입하지 못했던 소비자에게 원망스러운 소리도 많이 들었다.
농사는 매 년 다른 날씨 변화에 따라 달라지고 (영농일지를 써야 하는 이유)정직한 농사꾼을 소비자는 알아 본다는 것과 임대차로 농사를 지을 경우에는(정직과신뢰) 반듯이 임대차계약서를 작성하고 혹시라도 있을 분쟁에 대비하여 투자되는 모든 경비는 꼭 영수증을 받아두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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