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깔크막의 숲 산행 이야기

순천 제석산 가는 길(563.3m)

깔크막 2009. 3. 25. 09:49

제석산을 가기 위해서 호남고속도로 승주I/C를 통과하여 857번 지방도로를 따라 금전산을 휘감아 돌면 낙안읍성이 나오는데 여기서 벌교를 향하여 계속 857번을 따라 순천시 방향으로 방향을 틀면 태백산맥이라는 하얀 입간판이 길 왼쪽에서 고개를 불쑥 내미는 모양으로 소설 태백산맥의 작가인 조정래 문학관과 현부자집이 반갑게 우리를 맞는다.

아담하고 고즈녘한 찻집의 앞에는 꽤 큰 연못이 있고 그 중앙에 섬처럼 생긴 곳에 백일홍 몇 그루와 소나무 한 그루가 초라하게 심어져 있는 모양새가 영 어울려 보이지 않았고 현부자집의 대문고리는 굳게  잠겨 속내를 볼 수가 없었으나 비우고 가는 집이라는 문패를 달고 길 손을 유혹하는 매력에 들어 가보고 싶다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시원하게 비우는 만족감을 느꼈다.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했던 꼭 필요한 시설이지만 구석지고 외진곳을 지켜야만 직성이 풀리는 시설인데도 누구나 거부감 없이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서 있는 비우고 떠나는 집의 아름다움을 간직하며 현부자 집 담벼락을 타고 제석산으로 들어갔다.

 

                                                             (현부자집 전경)

 

임도를 따라 주변의 풀과 나무를 제거하여 가장자리에 놓아 둔 덕택에 솔향은 더 진하고 향기로웠고 진달래와 생강나무꽃이 만발하여 우리 일행의 발 길은 가볍기만 했고 절로 콧노래가 나오는 산행길이 되었다.

소나무의 키가 작고 몸집마져 퉁퉁하지 않아 혹시 산불 때문에 그럴까를 짐작만하고 있었는데 얼마 쯤 올라가다 보니 소나무 밑동이 심하게 그을린 자국을 볼 수가 있었고 바로 전날 비가 온 탓으로 한결 봄기운이 올라 있었던 제석산(563.3M)은 순천의 별량면에 있으나 낙안면과 벌교읍을 아우르고 있기 때문에 벌교 사람들은 벌교 제석산이라고도 부르고 있고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주무대로 호남정맥의 준봉 조계산이 남동쪽으로 보성과 순천의 경계의 산으로 멀리서 보면 그저 평범하디 평범한 산이지만 산 속으로 들어가면 들어 갈수록 아름다운 암봉이 눈을 사로잡고 제석산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유는 제석천이 수미산 정상에 있는 도리천의 선경성에 살며 사천왕을 통솔한다고 하고 우리의 제석신앙은 하늘에 대한 외경심리가 깊이 관련되어 있으며 제석산은 불교의 영향을 받았으며 지역민의 불심도 어느정도 작용했으리라 보며 실제로 신선대와 정상의 모습을 멀리서 보면 임금이 쓰는 관 모양을 하고 있는 모습도 볼 수가 있었다.

 

 

                                                       (제석산 정상과 신선바위)

 

제석산의 산행의 특징은 까다롭거나 지치게 하지 않는 완만한 산행길이 계속되고 산으로 깊이 들어서서 내려다 보면 득량만의 아름다움과 멀리 낙안 뜰의 픙요로운 모습을 볼 수가 있었으며, 제석산 발 아래에 무릎을 꿇은 듯한 고흥의 첨산이 힘차게 솟아 오르다 힘에 부쳤거나 주변에 첨산을 받쳐 줄 만한 산이 없어 감히 제석산에 도전하다 용기만 하늘에 솟구치다 만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신선대라는 바위봉에 의자모양을 한 바위가 제일 높은 곳에 놓여 있으며 신선이 놀다 간 곳이라는 암릉구간을 지나면 쉽게 제석산에 오를 수가 있으며 산행의 시간은 아주 짧아 왕복을 해도 3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정상에 오르면 좌우로 억새가 발달하여 동화사로 가는 길을 막아 서기도 하지만 잘 보면 오소리가 다닐만한 길이 삐뚤삐뚤 보인다.

억새길을 지나 철쭉이 가득한 길을 가다보면 오소리가 키가 작은 탓에 사람은 쉴 사이없이 나무를 헤쳐야하는 번거로움도 있는 산길이 계속되다 임도를 만나면 동화 가는 길은 탄탄대로로 이어지나 반듯이 원점회귀를 해야 한다면 뒤 돌아 서서 정상을 거쳐 다시 내려와야 한다.

만약 동화사까지 내려 갔다면 버스가 다니는 곳 까지 가려면 족히 5KM는 아스팔드 길을 터벅이며 걸어야하므로 차라리 되 돌아오는 것이 기분좋은 산행이 될 것이다.

제석산에서 자주색 얼레지가 아주 넓은 면적에 대규모 군락을 이루고 살고 있었으며 흔하게 볼 수가 없는 노랑제비꽃도 자기 영역을 넓히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으며 솜나물과 양지꽃이 산행로 가장자리를 아름답게 수놓고 있었으며 동화사의 인근 마을에는 커다란 삼지닥나무가 향내를 퍼 올리고 계곡의 양지쪽에서 수줍은 듯 하늘을 향해 나팔을 불어대는 현호색이 무더기로 자라는 모습을 덤으로 볼 수가 있었다.

인가를 지나 동화사 들입에 들어서니 사방의  붉은 글씨가 괜히 마음을 초조하게 하였고 동화사 뒷산에 동백나무 숲 속에서 온갖 새들이 사랑을 나누고 짝을 만나지 못한 새들이 짝을 부르는 소리로 떠들썩하여 행여나 동박새가 있을까하여 고개를 쑥 내밀다 붉은 글씨로 인하여 자세하게 동화사를 둘러 볼 수 있는 기회를 버리기로 하였다.

동화사는 서기 1407년에 대각국사(의천)가 창건하였는데 지금의 낙안에서 보니 동으로 서기로운 구름이 띠를 이루며 걷히는 상서로운 모습을 보고 산을 개운산이라고 부르고 그곳에 가람을 열었으나 정유재란으로 화를 당한 후에 독지가의 도움으로 다시 중수되었다고 한다.

 

 

                                                          (동화사 전경과 범종각)

 

벌교에 왔으니 조종래문학관과 현부자집과 홍교 고읍리 은행나무도 둘러보는 것이 산행과 문화가 어울러진 여행이 될 것이다.

벌교라는 지명은 때다리(땟목을 엮어 만든 다리)에서 왔고 때다리는 바로 홍교이며  보물 30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벌교리에 위치하고  선암사의 승선교와 모습이 비슷하며 숙종 44년 1718년에 당시 낙안현의 주민들이 때다리를 만들어 이용하다 1728년 대홍수로 유실되자 선암사의 초안과 습성대사가 영조 10년 1734년에 완공하였다는 내용이 선암사 승선교 홍교비에 기록되어 전해지게 되었으며 1984년에 보수를 완료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홍예를 연결하여 석교를 만든 형태를 궁융형이라고 하는데 이 양식은 석빙고 청운교 백운교 성문 등을 비롯하여 동류의 기법은 아주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는 것을 흔하게 볼 수가 있을 것이다.

고읍리에 자리한 은행나무는 원래는 천연기념물 90호로 지정되었으나 지금은 격하되어 지방기념물 147호로 관리 보호되고 있으며 원래의 나무는 나이 600년 높이 40M 둘레가 10M가 되었으나 불타버리고 맹아지가 자라 높이 27M 흉고 3M로 자랐기 때문에 천연기념물에서 제외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마을에서는 신목으로 모시고 매년 당산제를 지내고 있있으며 은행을 따다 떨어져도 다치지 않고 자식이 없는 사람이 치성을 드리면 자식을 낳고 유주를  달여 먹으면 자식을 낳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것을 보면 다른곳의 당산나무는 가지를 꺾거나 해를 입히면 벌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인데 이곳의 은행나무는 다른 곳의 당산나무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근처에 있는 낙안면의 낙안읍성을 같이 둘러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