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깔크막의 숲 산행 이야기

고리봉 가는 길(708m)

깔크막 2009. 3. 13. 17:55

고리봉 가는 길

 

사람이 공간속이 아니고 시간 속에서 산다면 세상은 얼마나 더 아름다워질까?. 하는 생각이 불연 듯 들게 하는 고리봉 산행과 얼마 전 괘일산의 정상에서 바라 본 소나무 숲의 또 다른 세계를 보고 놀라기를 몇 번 했다면 이번 고리봉의 산행은 소나무의 진면목을 송두리째 들여다보고 문자가 발명된 이래 관심조차 없었던 소나무의 한자명인 松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 귀중한 산행이 아니었을까?.를 느끼고 온 산행이 될 것이다.

 

 

松이라는 문자가 木+公이라며 누군가가 이야기 할 때 하기야 우리나라에도 정이품 소나무가 있으니 나무라고 벼슬을 하지 말라는 법이 있겠냐는 생각을 했다.

소나무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보고 소나무가 바위와 천애절벽에 아주 잘 어울린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산이 고리봉이고 우리가 흔히 보았던 산수화가 사방에 지천으로 펼쳐져 화가가 아니더라도 시인이 아니더라도 한 폭의 산수화와 한 편의 시를 읊조리게하는 산이 고리봉이다.

섬진강을 휘감아 돌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하고 싶어 고속도로가 아닌 낭만적이고 목가적인 길을 선택 한 이유로는 모든 것이 빠르게만 진행되고 그런 사람만 살아 갈 수 있는 지금의 세상에서 남에게 밀리듯 쫓기지 않고 사방을 유유자적 돌아보는 여유와 세상의 아름다운 경치를 일행에게 보여주고 싶어 일부러 고속도로가 아닌 네모속의 길을 자연적으로 선택하게 되었다.

다행히도 가고자하는 길은 내가 아주 잘 아는 길이었고 길을 따라 가면서 나무와 섬진강과 바위와 들에 대해서도 알고 나누어 주고 싶은 것들이 많은 길이었기에 운전을 하면서도 쉬지 않고 요강바위가 어쩌고 저 바위가 어쩌고 저 길로 가면 무엇이 나오고 섬진강을 따라 가면서 대강농협이 어쩌고 그때 섬진강 은어의 맛을 보여 준다고 했는데 무엇이 그리 바빠 결국은 맛 보지 못했는지 섬진강 너머 저리로 가면 공업의 대명사 격인 타이어 공장이 있고 옆에 보이는 산이 동악산이고 그 밑의 계곡은 청계계곡이고 한 여름에 가면 사람 등쌀에 자동차의 소음에 머리가 아픈 곳이니 차라리 어디 어디가 낫다는 둥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건내도 잘 들어주고 맞장구를 쳐주는 일행이 있어 완연한 봄날의 상쾌함을 차창 밖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고리봉의 산행을 알리는 푯말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고리봉이 있는 산들이 불쑥불쑥 머리를 들이대며 공간의 세상에서는 볼 수가 없고 시간을 쪼게야 볼 수가 있는 마이크로 렌즈를 쓴 눈처럼 고리봉의 아름다움을 순간순간 보여 주기를 몇 번하고 섬진강의 허리를 감싸 돌기를 반복하다 보니 금지 들녘이 받치고 떠 받드는 고리봉이 한 눈에 들어왔다.

농사일로 바쁘게 움직이는 농부의 거친 숨소리를 들으며 비닐 옷으로 중 무장한 포도나무가 물 퍼 올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빨간 리번에 써 있는데로 천만리장군묘소가는길을 따라 고리봉을 오르기 시작했다.

입구의 골짜기에서부터 유일한 소나무 단일 수종으로 밭을 이룬 숲으로 들어가니 아카시나무가 몸통을 불리지 못하고 고사한 시체들이 사방에 나둥글기 시작하였고 사방오리가 양지 쪽에 자리를 잡기는 잡았으나 베어지고 넘어지고 겨우겨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소나무만 키도 몸집도 불리지 못 한 채로 고만고만 하지만 품위를 지키면서 바위 틈은 말 할 것도 없이 빽빽하게 자리를 잡고 있으면서 군데군데 노간주나무가 어설프게 소나무 숲을 향해 도전하는 모양새로 바위 틈에 용케도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성스러운 묘역의 언저리에는 죽은 자의 덕을 입고 삽주와 비비추와 맑은대쑥과 지난 가을이 얼마나 혹독하였던지 검은 열매를 바싹 말려 떨어뜨리지도 못하고 달고 있는 정금나무가 애처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미끄럼을 타면 신날 것 같은 바위와 온갖 모양을 한 바위들을 보다가 저 바위 밑에는 무엇이 있을까?.가 궁금하여 엉덩이를 뒤로 빼고 발꿈치를 높이들고 고개를 빼꼼하게 내밀며 절벽 아래를 쳐다보니 가슴을 두근두근하게 하며 밑을 보여주지 않는 절벽에 천년을 오므리고 산 듯한 부처손이 식구마져 불리지 못하고 근근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바위의 모양을 감상하고 바위와 한 껏 어울린 소나무를 감상하고 하늘 한 번 쳐다보지 못하면서도 잠시만 해찰하고 겸손하지 못하게 고개를 쳐들면 소나무가지가 여지없이 얼굴을 내치며 발 밑을 조심해야 한다고 잔소리를 늘어대는 모습에서 잊어버리기 어려운 선생님의 얼굴도 보였다.

산이 좋아 산에 오르면서 산의 정상을 보는 산행을 접고 산을 느끼고 주변을 훠이훠이 둘러보는 여유가 생기면서 산행의 속도는 일반인의 산행 속도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늦은 까닭에 두 시간이나 걸려서 천만리장군이 두 눈을 부릅뜨고 변함없이 남원과 곡성의 경계를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는 묘소에 도달 할 수 있었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바위와 소나무 밖에 없는 단조로움에서 벗어나 하늘을 보고 멀리 조망되는 산들을 바라 볼 수가 있었다.

커피 한잔을 나누어 마시고 사전에 공부한 천만리장군에 대하여 논하고 장군을 모시는 사당이 고리봉 아래에 있어 내려가면서 들리기로하고 봉우리를 넘어 만학재를 지나 고리봉 정상에 도착하니 밑으로 흐르는 섬진강이 동악산과 고리봉을 둘로 나누면서 금지의 넓은 들녘을 적시며 구례로 향하는 모습이 훤하게 보였고 남원의 요천이 섬진강을 마중이라도 나온듯이 합류하는 모습이 보였고 멀리는 개미보다 더 작은 자동차가 88고속도로를 꼼지락거리며 가는 모습이 보였다.

주변에 보이는 산들의 이름을 맞추어 보고 멀리 보이는 도시도 들여다보며 555봉의 험한 암릉구간을 지나고 푯말이 있는 만학재로 내려가는 길을 버리고 산에 취해서 아름다움에 반해서 삿갓봉을 지나 큰골로 내려오는 길을 선택하였다.

암릉구간을 지나니 발 밑이 편안한 부드러운 흙의 촉감을 느끼면서 한결 키가 작아져버린 소나무 이야기로 한참을 바위에 기대고 쉴 수가 있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보면 진시황제가 비를 피하려고 나무 가지 밑으로 들어 섰는데 비를 피하게 해준 나무가 고마워서 벼슬로 남작 즉 공(公)이라는 칭호를 주어 그때부터 소나무가 송(松)이 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솔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솔은 으뜸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고 한다.

소나무에도 종류가 있어 크게는 육송(陸松)과 해송(海松)이 있고 몸통의 색으로 구별하자면 적송 백송 반송등이 있는데 적송에는 대부분 육송과 해송이 포함되고 다른 이름으로는 춘양목이나 금강송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고 해송은 곰솔이나 흑송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햇볕과 바닷바람의 영향으로 몸통의 색이 검고 육송에 비하여 질감이 거칠고 백송은 역시 몸통의 색이 희고 약간의 붉은 반점이 있으며 중국에는 많으나 우리나라에는 관상용으로 그 수가 많지 않아 쉽게 보기는 어렵고 특별한 모양의 반송이 있는데 우리가 정원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가 있으며 그 모양이 쟁반을 닮아서 반송이라고 한다.

그외에도 미국이 원산이고 일본을 통해서 들어온 리기다소나무가 있고 키가 크고 잎이 아주 길고 아름다운 대왕소나무가 있으며, 나한송 금송 잣나무 방크스소나무 테에다소나무 와 낙엽이 지는 잎갈나무등이 있다.

추억속에 존재하는 국민학교 시절에는 수업도 걸러가며 송충이를 잡았던 기억이나고 봄이면 소나무에서 줄기를 꺾어 겉껍질을 벋겨내고 하얀 속살을 생키라고 부르면서 이와 혀로 긁어서 먹으면 달콤한 수액과 진한 소나무 향을 동시에 먹었던 기억이 있으며, 소나무 숫꽃을 개밥이라고 부르면서 간식거리로 먹었던 기억이 있는 우리에게는 언제나 가까이 있었던 정겨운 나무가 소나무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굳이 소나무로 만든 집에서 살지 않는다고 할 지언정 1960년대 이전에는 소나무에서 떨어진 잎은 땔감으로는 없어서는 안될 아주 중요한 나무였다.

겪어보지는 못했지만 일본이 우리의 주권을 빼앗아 갔던 시절에는 송진을 채취하여 송유라는 기름으로 만들어 전쟁에 사용할 비행기를 운행하였다는 기록도 있고 지금도 그때의 생채기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소나무가 그때의 일을 증언이라도 하듯이 우리 숲 곳곳에 있다.

우리 선조들은 소나무와 측백나무를 松柏이라고 칭하며 절개와 지조를 자랑했고 고리봉에서 처럼 천애의 절벽에서 아름답고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거친 비바람과 폭설에도 굴복하지 않고 굳굳하게 태어난 그자리를 지키는 소나무가 있는 반면 백사청송(白沙靑松)이라는 이름으로 하얀 모래와 어울어진 소나무 숲은 지금도 절경으로 삼고 사시사철 사람의 발길을 붙드는 곳이 우리 곁에는 많다.

 

  

 

그밖에 소나무의 문화로는 송병(松餠) 송편 송화다식 술문화 음식문화와 시문학 등을 이야기 하면서 지나온 길을 돌아 보면 고리봉이 벌써 저 만치 허공에 덩그러니 걸려 있었다.

산을 오를 때는 정신없이 정상만 보고 오른다고 했지만 고리봉은 어느 한 곳도 그냥 지나치거나 정상만 보고 올라갔다가는 후회하기 쉬운 산이라는 것을 걸어 온 길을 뒤 돌아 봄으로써 확인 할 수가 있었다.

남미의 안데스산맥의 높은 곳에 산다는 콘도르처럼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움을 만끽 할 수가 있었던 고리봉 산행에서 소나무 단일수종의 식생으로 서운함은 남아 있었지만 소나무만으로 이루어진 숲이 전혀 낯설지 않고 소나무와 더 깊게 호흡을 할 수가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