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깔크막의 풀 나무 이야기

회화나무 이야기

깔크막 2010. 7. 1. 21:08

 

회화나무 이야기

 

회화나무는 콩과의 식물로 다릅나무와 가장 비슷하게 생겼으며, 다른 이름으로는 회화목(懷花木), 회나무, 홰나무, 괴화나무, 괴목, 괴수, 중국에서는 학자수, 출세수, 행복수, 부자수, 선비나무라고도 부르고 회화나무는 겨울이면 낙엽이 지며 키가 크게 자라는 낙엽활엽수로 토심이 깊고 비옥한 사질양토에서 잘 자라는 나무이나 대체적으로 척박한 땅에서도 자라고 특히 내한성이 강해 우리나라 어디에든지 자라는 나무이다.

잎은 다른 나무가 모두 잎을 낸 다음에 학자수라는 이름에 걸맞게 거드름을 피우듯이 아주 늦게 피어나고 꽃도 8월이 되어서야 그다지 화려하거나 향기도 은근하지 않는 황백색의 꽃을 피우고 수형은 아름답고 단정하고 염주모양의 독특한 모양의 꼬투리를 갖은 열매를 가을에 익혀낸다.

회화나무는 보통 크게 자라면 25m 정도까지 자라며 어린가지의 색은 녹색으로 잎은 아카시나무의 잎과 비슷하고 약간 불쾌한 냄새가 나나 기분을 상 할 정도의 냄새는 아니며  짙은 녹음과 깨끗한 이미지를 주고 대기 오염에도 강한 특성이 있어 도시환경에 적응한 몇 안 되는 나무로 가로수, 공원수, 학교, 골프장등에 많이 심는 조경수로의 가치가 매우 높은 나무이다.

종자로도 번식이 가능하나 보통은 삽목을 통해 증식하고 종자번식은 가을에 채종한 종자를 노천매장을 하였다가 이듬해 봄에 파종하고 삽목은 봄에 전년도에 자란 가지를 잘라 묘판에 심어 뿌리가 내리면 이듬해에 본 밭에 옮겨 심어 관리한다.

일조량이 풍부하면 나무의 위쪽부터 풍성하게 꽃을 피우는 모습을 보고 조상들은 풍년이 든다며 좋아했고 정자목으로 심어 놓고 학자들은 아주 좋아했는데 다른나무에 비해 산소발생량이 많이 발생하면서 게르마늄이 포함되어 있어 공부가 잘 되므로 학자수라고 부르고 있으며 웃기는 이야기로는 학자들이 자기 나름데로의 이론을 내세우는 것을 비유한  모습과 나무의 가지가 다른 나무에 비해 마음대로 자라는 것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학자수라고도 부른다.

회화나무를 학자수라고 부르는 이유를 확인이라도 하는 듯이 학자가 많이 난 고장에 많이 심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으며 선비들은 집 앞에 회화나무를 심고 뒷산에 쉬나무를 심어 쉬나무 열매에서 짜낸 기름으로 등잔불을 밝혀가며 공부를 하여 과거에 급제하고 또는 퇴직 한 후에 기념식수로도 많이 심었다고 한다.

회화나무는 중국이 원산지로 조정에 3그루를 심고 삼공(삼정승)과 국사를 논의했다고 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오래 전부터 마을 어귀에 정자목으로 심었는데 나무의 그늘이 넓어 마을 사람들이 편히 쉴 수가 있었으며 특별하게 병충해가 없어 여름이면 나무 밑에서 쉽게 쉴 수가 있는 나무이며, 지금은 가로수로 가장 많이 심고 있지만 조선시대 때 만 해도 학자나 권세가 있는 집만 회화나무를 집 안에 심을 수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회화나무를 집안에 3그루를 심으면 좋은 일만 가득하고 학자로써 추앙을 받는 인물이 태어난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어 믿거나 말거나 집안에 3그루 쯤 심어 좋은 일만 가득하고 훌륭한 학자가 태어나기를 기다려보는 것도 좋은 생각이 아닐까?.한다.

 

회화나무는 광주광역시 전 전남도청 의회회관 앞에 노거수(사는 곳에 문제가 있어 노거수로의 위압감이나 경외함은 주지 못한다)로 자라고 있으며, 괴정동에 가면 600년된 회화나무가 있으며 괴정동의 유래가 되는 나무이기도 하며 회화나무가 있어 생긴 명칭으로는 동해남부선으로 효자역과 포항제철을 잇는 괴동철로가 있고, 의정부의 옛 이름이 괴부였다고 한다.

약 600년 전인 고려 공민왕(재위 1351년∼1374년) 때 마을에 살던 젊은이가 외적을 물리치기 위해 전쟁터로 나가면서 회화나무를 심어놓고 부모님께 자식처럼 키워 달라는 부탁을 한 젊은이가 전쟁터에서 장렬하게 전사하였고 부모는 아들의 뜻대로 이 나무를 자식같이 여기며 가꾸었다는 경주 육통리 회화나무가 있고 인천 신현동 회화나무는 나이가 약 500살 정도이며 가지가 사방으로 길게 뻗어 있어 마을 사람들에게 큰 그늘을 제공해 주고 있으며, 마을 사람들은 나무에 꽃이 필 때 위쪽에서 먼저 피면 풍년이 오고, 아래쪽에서 먼저 피면 흉년이 든다고 예측했다고한다.

또  당진 삼월리 회화나무도 나이가 약 500살 정도이며 조선 중종 때 좌의정을 지낸 이행이 중종 12년(1527년) 이곳에 내려와 집을 지으며 자손의 번영을 기원하면서 심었다고 전해진다.

함안 영동리 회화나무도 나이가 500년 정도로 추정되며, 광주 안씨의 22대조이며 성균관 훈도를 지낸 안여거가 영동리에 정착하면서 심은 것으로 마을사람들은 이 나무가 마을을 지켜주는 신성한 나무라고 믿고 있으며, 매년 음력 10월 1일에는 나무 앞에서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는 회화나무가 500년 이상  자라고 있으면 대개 심은 내력이 전해져 오고 있으며 마을의 안녕을 지켜주는 신목(정자목)으로 치성을 드리면 병이 낫는다거나 집안이 화평해진다거나 전염병이 피해 간다거나 하는 전설과 함께 나무에 손을 대면 큰 횡액을 당 한다는 이야기도 같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모양이 둥글고 온화하여 중국에서는 높은 관리의 무덤이나 선비의 집에 즐겨 심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을 왕래하던 사신들이 회화나무를 들여와 향교나 사찰 등에 심었다.

지금은 회화나무를 활엽수 중 공해에 가장 강한 나무로 가로수나 공원수로도 많이 이용되고 있는데 광주 첨단의 초 중 고 대학교가 밀집되어 있는 도로에 가로수로 심어져 있으며 서울에도 압구정과 연신내와  올림픽대로의 가로수로  회화나무로 심어져 있고 외국의 예로는 프랑스의 파리는 물론 원산지 중국의 북경에는 회화나무가 가로수로 심어진 곳이 많아 사람들이 떨어지는 괴화를 말려 약제로 사용하고 있다며 한국농업대학교 권영휴교수는 회화나무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이나 형태적으로 도심지의 조경에 가장 잘 어울리는 나무라고 특별하게 힘을 주어 강조하며 신도시의 조경에 그 가치를 발 할 것이라며 말했다. 

 

회화나무 꽃차(괴화차)는 우리나라에서는 마시는 사람이 많지 않으나 맛이 특이하고 몸에도 좋으며 기록에 의하면 조선 시대의 학자 이수광이 유두날에 수단을 먹는 것은 옛날 회화나무 잎을 찬물에 띄워 먹던 것과 같은 것으로 액운을 쫓기 위한 것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면 우리 선조들은 회화나무 꽃차를 즐겨 마셨던 것 같다.

꽃은 괴화(槐花)라고 하여 고혈압의 예방과 치료약으로 쓰고 꽃피기 전의 봉우리를 괴미라고 부르는데 그 모양이 쌀을 닮았기 때문이며 회화나무 꿀은 항암효과가 높고 괴화나 열매에는 루핀이라는 노란색 색소가 20~30%가 들어 있어 천이나 종이를 염색하는데 말린 괴화를 물에 담가 노란 색소를 우려내어 닥종이에 염색을 하는데 이렇게 만든 종이를 괴황지라고 한다. 

회화나무 열매를 괴실, 괴각 또는 괴관으로 부르는데 그 모양이 특이하게도 염주 모양인데 강장, 지혈, 양혈(涼血)등의 효과가 있으며, 맛은 쓰고 시며 짜고 성질은 차고 독이 없다.   

덜 익은 열매를 모아 즙을 짜서 이용하며 열매즙을 괴료(槐療)라고 하여 중풍이나 신경계통이 질병을 치료하는 데 쓰이고 드물게 이른 봄 철 곡우 무렵에 회화나무 줄기에 상처를 내어 수액을 받아 약으로 쓰기도 한다.  

회화나무 밑동에 드물게 버섯이 나는 수가 있는데, 괴이, 괴아, 괴균, 괴치 등으로 부르며 항암효과가 매우 높고 맛이 쓰고 매우며 성질은 평하고 독이 없으며 열매나 껍질, 가지도 차로 끓여 마시면 뇌를 튼튼하게 하여 기억력을 좋게 하고 머리카락을 검게 하며 눈이 밝아지는 등의 효과가 있다.   

'그룹명 > 깔크막의 풀 나무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목화 이야기  (0) 2010.07.08
모시풀 이야기  (0) 2010.07.04
차나무 이야기(2)  (0) 2010.06.29
벗풀(Sagittaria trifolia L) 이야기   (0) 2010.06.27
올방개(Eleocharis kuroguwai ohwi) 이야기  (0) 2010.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