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 영천리 방울샘(長城 鈴泉里 鈴泉)이야기
장성 영천리 방울샘(長城 鈴泉里 鈴泉)은 전라남도 기념물 186호로 지정되었고 수심은 약 1m, 둘레 15m, 높이 2m로 화강암으로 막아 예스러운 모습은 없으나 아주 깨끗하게 잘 관리되고 있으며, 전체적인 면적은 145㎡ 정도 되며 장성읍에서 고창 쪽으로 고가도로에서 좌회전하여 들어가면 교육청을 오른쪽에 두고 느티나무가 있는 정자를 지나면 영천리 오동촌이 나온다.
방울샘에는 느티나무 몇 그루가 마을의 오래된 역사를 말해주나 주차장은 없으므로 마을 입구에 주차를 하는 것이 좋으며 산행을 겸하는 문화여행이라면 방울샘에서 약수를 한 병 가득히 담고 제봉산(啼鳳山)과 한양 가는 길과 이재산성을 거쳐 626봉(귀바위봉)을 지나 불태산을 다녀오는 산행도 멀지만 권해 볼 만한 산행길이다.
鈴泉里는 오동촌(梧桐村)에 있는 방울샘(鈴泉)에서 유래하였으며 오동촌(梧桐村)은 앞 산이 제봉산(啼鳳山)이고 산자락인 오동촌에 봉황이 깃든다는 오동나무가 많이 있어 부르게 되었고 고경명장군의 묘를 관리하는 산지기의 집이 있다하여 아주 오래전에는 산지기 촌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오동촌에는 국회위원과 도지사를 지낸 노농 김재식선생이 살고 있으며 금융계ceo, 교수, 의사, 변호사, 경찰서장, 육군장군등이 탄생한 마을로 부녀회관 뒷 편(해주아파트 입구 쪽 밭)언덕에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고경명의 묘소와 고경명 장군의 신도비(高敬命神道碑)가 있는데 건립 연대는 알수 없으며, 크기는 높이 238cm, 넓이 88cm, 두께 41cm 이며 윤근수가 비문을 짓고 7대손인 고정헌이 글씨를 썼다.
방울샘(시암:샘의 전라도 사투리) 뒷 쪽에는 노농 김재식선생의 부친인 오천 김구현선생 실적비와 오천정사(오천정), 금성나씨 유허비, 노농 김재식선생의 불망비와 선생의 농민사랑이 절절하게 녹아있는 고무대야 논과 쌀의 집(벼의 이름:天命)이 있다.
오동촌은 방울샘제와 당산제를 지내는 마을로 전통과 역사적 의미가 있는 마을이므로 오동촌 방울샘 여행에는 주변에 있는 역사적인 사실을 안다면 알찬 여행이 될 것이다.
근처에는 흔적 뿐인 이재산성과 백제 말기 지배자급 무덤인 돌방무덤이 보해양조 입구에 있으며 현 위치에서 100m 떨어진 곳에 있었던 것을 지금의 위치로 옮겨와 복원해 놓은 곳으로 1986년에 발굴 할 때 귀걸이, 목걸이용 소형구슬, 뚜껑접시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방울샘(長城 鈴泉里 鈴泉)이 지금의 모습은 샘 옆의 빗돌을 보면 알 수 있는데 1931년 샘의 둘레에 석축을 쌓았으며 1991년 재정비를 했는데 석축 위에 대리석으로 모양을 내었으며 방울샘의 배수로를 정비하고 바닥에 자갈을 넣었다.
방울샘은 500여년 전에 용이 승천한 소(沼)였으며 그때도 마을의 공동우물이었었으며, 방울샘이 영천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국가적인 재난을 알려주기 때문인데 실제로 동학난과 한국전쟁등 천재지변의 징후로는 벌건 황토물이 솟아오르고 대풍년이나 국가적으로 좋은 일이 일어나려고 하면 쌀뜨물 같은 흰 물이 나온다고한다.
방울샘은 과학적으로는 지층 구조상 지질습곡대에 의해 지표 가까이 노출된 지하 대수층이 지표에 가장 근접한 지역에 우물이 만들어졌으며 지하수가 흐르면서 화학적 변화하여 방울처럼 솟아 오르는 모습을 보고 부르게 되었다.
석회암층에 집적된 철 성분들이 대수층 내에서 수시로 풍화되면서 가끔씩 물의 색을 변화시킨 것으로 볼 수 있고 자연 현상으로는 쉽지 않게 방울방울 솟아오르고 물빛이 변한다는 특이한 지질구조로써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이 복합되어 있어 가치가 있다.
방울샘에는 손가락 만한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사는데, 물방울이 방울방울 올라오는 것은 이 샘 아래 용왕이 숨 쉬고 있는 현상이며, 물고기는 용왕의 사자들이라 하여 이 물고기는 절대로 잡지 않고 큰 가뭄에도 항상 일정한 양의 물이 흐르는 신비한 약수로 알려져 사시사철 찾는 이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일부 장성군청에서 발췌)
방울샘에 대하여 지리지로서 맨 먼저 기록이 확인되는 것은 <대동지지>(1865년, 김정호 찬)인데 소재처만 간략히 기록되고 있다.
이어 관찬 성격의 <호남읍지>에 포함된 <장성부읍지> 산천조에 2종(1872년, 1899년)에 "부(府)의 동쪽 5리에 있다. 물이 솟아 나오는 것이 방울과 같은데 영험과 이적이 자주 있다.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지냈다.(鈴泉 在府東五里 湧水如鈴 頻靈異 當旱祈雨祭)".
그리고 1927년에 간행된 <장성읍지> 이적조(異蹟條)에 영천 : 장성면 영천리에 있다.
샘의 맥이 드러난 곳의 모래 가운데에서 수많은 방울들이 떠 올라 끊이지 않으니 이름부르게 되었다.
물색깔의 적백(赤白)으로써 세상 일을 징험하고 청탁(淸濁)으로 1년 일을 점쳤다.
샘안에 물고기는 모두 오른 눈이 멀었다.
비록 다른 물에 있던 것도 한번 이 샘에 들어오면 또한 눈이 먼다.
"사람들이 만일 고기를 잡으면 반드시 재해를 받게 되는 까닭에 서로 경계하고 침범하지 않았다.(鈴泉 在長城面鈴泉里 泉脈散出 沙中萬鈴 浮上不絶 故名之 以水之赤白 驗世事 淸濁 占年事 泉中魚族盡盲右目 雖他水所産 一入是泉則亦盲 人若釣取 必受災害 故相戒不侵)" 기록되고 있는데, 방울샘이 장성의 명소로서 자리를 잡아왔던 것을 알 수 있다.(장성군청에서 전문발췌)
**. 고경명의 자는 이순(而順), 호는 제봉(霽峯), 시호는 충렬, 본관은 장흥으로 1558년(명종 14) 문과에 장원을 하여 형조좌랑, 홍문관 교리 등을 지냈으며 왕의 교서를 작성하는 지제교를 겸하였다.
1581년(선조 14) 영암군수, 성균관 사예, 동래부사를 역임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담양에서 창의하여 6천여 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북상하여 금산의 일본군을 공격하다 교전 중에 순절하였다.
차남 고인후도 같이 죽었으며 장남 고종후는 이듬해 진주성싸움에서 순절하였다.
기대승, 정철, 이이 등과 교유하고 문장으로 특히 시에 능하였으며 저서로 제봉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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