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깔크막의 숲 이야기

옥룡사지 숲공부자료1

깔크막 2005. 3. 27. 01:14

백운산의 속살이 점점이 묻어나는 광양을 들어가며,,,,


백운산(1218m)의 남쪽 양지바른 터에 자리한 옥룡면에 가서 무당벌레가 천방지축으로 노니는 파릇파릇한 보리밭과 옥룡사지의 동백림, 중흥사지의 생강나무꽃, 백운산휴양림의 숲 속에는 동백나무 숲 속에 간직된 천년의 불교 성지...옥룡사지는 통일신라 말의 뛰어난 고승이자 한국풍수지리의 대가인 선각국사 도선이 35년간 머무르면서 수 백명의 제자를 가르치다 입적한 곳으로, 우리나라 불교역사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천년의 불교성지이다. 옥룡사지는 옥룡면 추산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옥룡"이라는 지명은 도선의 도호인 "옥룡자"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온다. 옥룡사지를 싸안고 있는 백계산(505.8M)은 주산인 백운산(1,218M)에서 뻗어 내린 지맥으로 형성된 아담한 산으로 백운산의 중앙부에 위치한다. 옥룡사는 신라 말에 조그만 암자였던 것을 도선국사가 864년에 중수하여 거쳐하였으며, 수백명의 사문들이 그의 법문을 듣고자 몰려들어 "옥룡사파"란 지파가 형성되자 몰려드는 인원을 수용하기 위해 인근에 운암사라는 사찰을 추가로 건립한 것으로 전해진다. 옥룡사는 몇 차례의 화재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사세를 이어 오다가 1878년 화재로 소실된 후 폐찰 되었으며 현재 서 있는 대웅전은 1969년에 건립되었다. 옥룡사지에는 도선국사와 수제자인 통진대사의 비와 탑이 세워져 있었으나 1920년경에 모두 없어져 버리고 비문만이 탁본되어 "동문선"등에 전해온다.  

옥룡사지 주변에는 도선국사가 땅의 기운을 보강하기 위해 심었다는 것으로 전해 오는 동백나무 7천여본이 7ha에 거쳐 울창한 동백 숲을 이루고 있는데 험난한 역사에 휘말려 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이 동백들만이 그 뿌리를 견고히 내려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옥룡사지 발굴. 복원을 위하여 옥룡사지 정밀 지표조사와 세 차례의 사지발굴을 통해 도선국사와 통진대사의 부도탑과 비석자리를 확인하였고 옥룡사의 규모 일부를 확인하였다.

 이를 토대로 지방기념물인 옥룡사지를 1998년 동백림을 포함 사적 제 407호로 지정받게 되었다 

백운산자연휴양림은 해발 1,218m의 백운산 기슭 옥룡면 추산리 백운산 서쪽에 솟아 있는 도솔봉 남쪽에 위치해 있다. 

백운산은 높이가 1,218m로 지리산을 제외하고는 전라남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백두산에서 금강산, 태백산, 속리산,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호남정맥은 마이산, 내장산, 무등산, 제암산, 조계산을 거쳐 이곳 호남정맥의 최고봉인 백운산에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백운산은 예로부터 봉황과 돼지 그리고 여우의 세 가지 영험한 기운을 지니고 있는 산으로 알려져 백운산 주변에서 대학자와 부자, 지혜로운 사람이 많이 배출된다고 전해져 오고 있다.

1993년 4월 26일에는 백운산 주변의 옥룡, 진상, 다압면 일원 약 9.7㎢가 광양 백운산 생태계 보전 지역으로 지정되었다. 백운산은 백운란, 백운쇠풀푸레, 백운기름나무 등 특산물과 산오이풀, 흰참꽃 같은 희귀식물이 다수 분포하고 있어 총 1,080여 종의 다양한 생물상을 보이고 있다. 

인근에는 천연림 기념물인 대규모 동백림이 생육하고 있는 옥룡사지 운암사가 자리잡고 있으며, 백운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등산 코스가 있어 백운산 전체가 천혜의 휴양지이자 자연 환경 교육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숲의 특징은 직경 30~40cm, 수고 약 17m 정도의 수간이 매우 곧게 자란 늘씬한 외국산 수입 조림 수종인 테다소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어 시원한 나무 그늘은 물론 산림욕장으로도 그만이다. 

백운산의 자연환경은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지리산과 남북으로 마주하고 있는 백운산은 전남 동부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1,217m)으로서 호남정맥의 최고봉이다. 도솔봉, 매봉, 억불봉과 연결되는 산맥은 산세가 수려하고 경관이 뛰어나며 광양시의 옥룡면, 다압면, 봉강면, 진상면에 걸쳐 있다. 온화한 남부지방의 기후 환경과 해안에서 가까운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산의 해발고도 등으로 인하여 백운산은 제주도에 이어 한국에서도 손꼽히는 동·식물의 보고로 알려져 있다. 

백운산에는 희귀한 식물이 많이 자라는데 ‘백운’이라는 글자가 붙은 특산종인 백운란, 백운쇠풀푸레 등과 산오이풀, 흰참꽃, 나도승마, 히어리, 털동자꽃, 눈빛승마, 물매화, 금장초 등 환경부가 지정한 보호야생식물을 포함하여 총 830여 종의 다양한 식물이 자생하고 있다. 

동물상으로는 매, 수리부엉이, 독수리, 붉은배새매, 호반새, 수달, 날다람쥐 등 멸종 위기 조수와 보호 조수를 포함한 조류 49종과 15종의 포유류, 그리고 아무르장지뱀, 무자치, 꼬리치레도롱뇽 등 양서파충류 17종, 청실잠자리와 풀색먼지벌레 등 곤충류 166종 등의 다양한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있는 생물 다양성의 보고이다.

북위 35도10분~35도21분과 동경127도22분~127도37분에 걸쳐 있으며 총 면적은 16217ha이며 고도는 해발 100m~1732m이다.

기후대는 온대남부대에 속하고 연평균 기온은 14,7도정도로 온화하고 1500mm~1800mm의 강수량은 우리나라 연평균 강수량인 1200mm보다 더 많은 편이다.

옥룡사지 입구 주변의 동백나무가 일반인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크게 자라 동백나무 터널을 이룰 정도이다. 수백 년 생 노목도 상당수가 되며 보통 동백나무가 남쪽의 해안지대나 섬 지역에 밀집해 자라고 있는 것과 달리 내륙으로 상당히 들어온 곳에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 매우 가치가 있으며, 생육상태는 매우 양호하다. 해마다 2월이면 꽃이 피기 시작해 4월까지 이어진다

옥룡사 대웅전 주변은 온통 옥룡사지 발굴현장이다. 1^2차에 걸친 발굴에서 도선국사와 통진대사 부도전지, 탑비전지 등 90여점이 출토됐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은 발굴을 중단한 상태라 비닐로 덮어 두었는데 발굴터 곳곳에 깨진 기와를 쌓아 놓았다.

 이곳의 유일한 민가에 사는 최복순(66)이란 사람으로 자신이 옥룡사지와 동백림을 관리한다

최씨는 해방 후 빨치산들과 군경의 대결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주민들이 생겨나고 얼마 후 국군 측에서 마을을 불태워 버려 그나마 모두 떠났다고 한다.

 이곳의 동백이 유난히 붉은 것도 그때 희생당한 주민들의 피가 아니겠느냐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백운산이 빨치산의 본거지였고 백계산(白鷄山)은 백운산 주봉의 하나인 도솔봉에서 뻗어내린 지맥이란 점을 감안하면 그의 얘기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동백나무를 도선국사가 심었다면 1천년은 넘어야 할 텐데 최고 수령이 4백년가량으로 추정된다며 이는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유래야 어찌하든간에 자생 동백꽃은 붉은색 밖에 으므로 자생적으로 숲을 이룬 것만은 확실하다. 동백꽃은 또 짓 밝혀진 여인의 순결을 뜻 하기도 한다.

 동백림의 압권은 옥룡사에서 운암사에 이르는 터널을 이룬 산책로에 들어서자 `삐리리 삐리리' 동박새의 울음소리가 경쾌하다. 

조그만 참새 크기의 동박새는 잿빛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 이 가지 저 가지에 열심히 옮겨 앉는다.

조매화(鳥媒花)인 동백에게 있어 동박새는 사랑을 전해주는 전령같은 존재다. 

동박새가 꽃가루를 부리에 묻혀 암술에 옮겨주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1,일미배의 원종인 참배나무를 찾아서

  

도선 마을은 도선국사가 선덕(善德)을 베풀기 위해 집집마다 참배나무를 심어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며 지금도 유일하게 한그루 참배나무가 고목으로 남아있어 꽂을 피우고 있다. 이 배는 서리가 날 때 따서 땅에 묻어 두었다가 조상의 제사와 자녀의 혼사에 쓰였는데 그 이름을 일미리(一味利)라 하였는데 맛이 제일 좋다는 뜻이다.. 

※ 일미(一味) : 부처에 관한 설은 여러 가지이나 그 본질은 동일하다는 뜻   


2. 3각형의 석주가 있다는데,,,


상산과 중산 가운데 도선국사가 심었다는 팽나무, 서나무, 괴목나무가 작은 숲을 이루고 있는데, 이 숲 밑에 3각형의 석주(石柱) 6개가 우뚝 서 있어 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 주며, 그 옆에 개구리 바위가 주변을 지켜 주고 있다..  

3.옥룡사지와 도선국사 (사적 407호) 


옥룡사지는 지리도참설을 주장한 통일신라시대의 선승(禪僧)인 도선국사(827∼899)가 37세에 주석(駐錫)하여 입적(공양왕 2년, 898년)할 때 까지 35년간 내내 이곳에 머물면서 제자들을 양성한 곳이다.

 또한 그는 이 곳에 주거하면서 강력한 성종일파인 옥룡사파를 개창하였다. 

지금은 1881년 실화로 인하여 소실됨에 따라 많은 유물이 사라졌고 비마저 파괴된 곳이 많다.

고려 의종 4년에 세워진 도인의 비인 선각국사 증성혜등탑비(先覺國師 證聖慧燈塔碑)는 이 마을 노인들에 의하면 1910년 초반까지 있었다고 하나 현재 사라지고 없으며,  비문는 동문선(東文選)에 실려 있다. 그 비 외에도 고려 광종(950∼975) 9년에 세워진 옥룡사 동진대사보운탑비(洞眞大師寶雲塔碑)도  조선금석총람上권에 실려 있지만, 역시 비는 남아있지 않다. 현재 옥룡사의 옛터에는 법왕사라는 자그마한 절이 세워져 있다.

도선국사은 전남 영암에서 출생하였으며 모친 강(姜)씨의 꿈에 어떤 사람이 광채나는 구슬 한 개를 주면서 삼키라고 하였는데 삼킨 후 태기가 있었다. 만삭이 되도록 매운 것 비린내 나는 것을 가까이 하지 않고 오직 독경과 염불에만 뜻을 두었다. 이미 젖 먹을 때부터 아주 달랐고 어릴 때 장난을 하든지 울 때에도 그 의향이 마치 불법을 공경하고 두려워 하는 것 같은 점이 있었다. 그 부모가 반드시 명승이 될 줄 알고 마음속으로 중이 되는 것을 허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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