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문화 유산을 가득 품은 양림동산 마실길을 따라 걷다.
근대문화 유산이 가득한 곳이 양림동산,
어느 도시나 있게 마련인 근대문화 유산이 가득한 곳이 양림동산의 양림촌이다. 광주에서는 최소한 그렇다는 것이다.
양림동산에 오르면 기독교문화가 한 눈에 오롯하게 보이는 선교사 묘역이 있다.
순교하면서까지 선교사들이 열정적으로 활동했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동산 아래에는 멋진 건물이 돋보이는 양림교회가 있다.
건물만 아름다운 곳이 아니다. 자신의 불편을 감수하고 지역주민의 어려움을 해소 시켜주기 위해 교회 앞마당을 혼쾌하게 주차장으로 내어주는 곳이다.
주민을 배려하는 마음과 정이 넘치는 교회라고 생각한다. 멀리서 통근하던 작년에 운행제한 부제에 걸리면 10여분 거리에 있는 교회 앞바당에 차를 세워두고 마음 편하게 근무 할 수 있었던 것도 다 교회에서 앞마당을 내어주었기에 가능하였다.
양림동산에 오르면 연속극을 촬영하였다하여 더 유명세를 탄 우일선(로버트 M 윌슨) 선교사의 집도 근대문화유산이라는 표찰을 달고 있고, 오웬기념관, 어비슨기념관도 있다.
그 앞마당에는 흑호두나무가 아름드리로 세월을 말해주고 있으며, 호랑가시나무도 세월을 녹이며 겨울이면 주변의 새들을 불러 자신이 만든 빨간 열매로 만찬을 즐기도록 배려하는 곳이다.
발 밑을 돌아 보면 생명을 다하고 혼신의 힘을 다하여 사그러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은단풍나무도 근대문화의 유산이다.
고향이 그리워 고향의 나무를 가져다 양림동산에 심었던 선교사들이 양림동에 기독교문화만을 고집하여 교회만 세운 것은 아니다.
기미년 3월1일에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두주먹 불끈쥐고 카랑한 목소리로 독립의 당위성을 외친 교육의 전당 수피아, 전문의료교육의 간호대, 종교의 신학대를 세웠다.
의료의 제중원(현 기독병원)을 통해 당시 배우지 못해 무식한 백성을 깨치고 먹지 못해 온갖 질병을 앓고 있던 민중을 따뜻하게 만져주었던 곳이 양림동산 아래 양림촌(구 서양촌)이다.
양림촌에 정착하며 우리에게 서양의 신문물을 전해주었던 선교사들의 묘역을 높으막한 곳, 그리고 양지바른곳에 정갈하게 절제된 모습은 지금도 지나는 사람들을 붙잡아 끄는 묘함 매력이 있는 곳이다.
양림촌에는 서양에서 들어 온 신문화의 유산만 근대문화유산으로 존재하는 것만 아니다.
멋들어진 우리 한옥이 있는 곳이다. 좁은 골목을 구불구불 걸어들어가면 이장우한옥(민속문화1호)과 독립운동가 최승효한옥(민속문화2호)이라는 이름으로 골목길을 더듬어 들어가게 만드는 곳이 양림동산이다.
양림동산에는 커다란 플라타너스(버짐나무)가 인상적인 사직도서관이 있고, 신학대 아래의 길목에는 멋들어진 까페도 있다.
커다란 나무를 본 떴으나 어수선한 뒷 배경과 어울리지는 못하지만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대문을 지나 양림천으로 가는 길목에 피서지, 탄약고, 방공호, 술집으로 사용되었던 석굴(현 양림동지킴이 )에서 사직동산을 오르면 하늘을 가리는 숲 속에서 한여름 한낮에 축축하고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는 노할머니의 모습이 늘 아른대는 전망대가 광주의 속살을 속속들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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