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깔크막의 우리동네 이야기

기록으로 본 맥동리의 변천사

깔크막 2012. 3. 8. 16:49

기록으로 본 맥동리의 변천사

현 맥호리(麥湖里)는 맥동, 매곡, 동정을 합쳐 부르게 되었으며, 1789년 당시에는 서이면 지역으로 여지도서에 의하면 현 황룡면에는 서일면, 서이면, 남산면이 있었으며, 맥동, 하등산(下登山), 관정(冠井), 원당(院堂), 매곡, 분매통, 상통, 하통, 금동, 사기점, 용암리, 용적, 초지곡, 북문, 소곡리, 하남, 생철점, 소곤리, 우라, 사기마을이 있었고 1912년 크게 맥동리, 난산리, 매곡리로 합쳐졌고 1914년에는 맥동리, 난산리, 매곡리가 합쳐져 맥호리(麥湖里)가 되었다.

이때 서일면, 서이면, 남산면이 합쳐져 황룡면이 되었고 면사무소는 내장산에 있던 것을 현 위치로 옮겼다.

맥동리였던 맥동에는 원맥동과 난산정이라는 마을이 있었으며, 나중에 원맥동이라고 부르게 된 원당마을은 원당봉 아래에 있었고 나중에 맥동으로 합쳐졌다고 한다.

하등산과 관정마을의 기록은 알 수가 없다.

난산정은 맥동의 울산김씨일가가 개창하였으나 나중에 광산정씨가 이주하여 마을의 명맥을 이었다고 한다.

맥동이라는 마을의 유래는 동네에 보리사라는 절이 있어 보리동으로 부르다 한자명인 맥동으로 바뀌었다.

난산정(卵山亭)은 원당봉의 산세가 알모양을 한 산기슭에 마을을 이루면서 난산정이라고 불렀다.

맥동으로 부르는 곳은 하서 김인후의 출생지이고 신도비가 있으며 필암(붓바위)가 있다.

하서 김인후가 탄생하였던 1510년 당시에 맥동은 장성현 대맥동리로 불렀고 1410년에는 원맥동이라고 불렀다.

맥정(麥井)마을은 1789년 당시에는 원맥정, 퇴전매라는 마을로 구성되었고 물이 귀해 맥정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맥정(麥井)으로 부르다 1912년부터는 맥정(麥亭)이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