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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입암산

깔크막 2004. 11. 4. 10:28
쉬엄쉬엄 갓바위 올라 산성터를 만나고...
장성 입암산
남신희 기자  

▲ 갓바위봉 아래로 가을들녘이 펼쳐져 있다
ⓒ 전라도닷컴

'소쇄(瀟灑)하다'는 말이 절로 떠오르는 길이다.
공기도 햇볕도 나무도 바람도 맑고 깨끗하다. 모든 것이 '정선'된 가을날 하루.
장성 입암산에 들어선 참이다.
호남정맥이 내장산을 지나 백암산으로 내리뻗는 도중 왼쪽으로 가지를 치며 솟구친 산이다. 산이름에서 '입(笠)'자가 재미있다. 산꼭대기의 바위가 초립을 쓴 것 같은 삿갓봉 모양이래서 입암(笠岩)산이다.
삿갓봉은 여기 있는 것만은 아니다. 삿갓봉이라 이름붙은 봉우리를 가진 산들은 많다. 그 중에서도 삿갓에 해당되는 암석 또는 지형적 특성이 가장 삿갓에 가깝고 그 크기도 큰 편에 속하는 게 입암산이다.

입암산(해발 687미터)은 전남과 전북의 경계를 이루는 산이기도 하다. 장성군 북하면과 정읍시 입암면이 이 산줄기를 경계로 나뉜다. 여름철이면 사람들이 많이 찾는 남창계곡이 산행 들목이다. 남창계곡은 산성골 은선동 반석동 정자동 자하골 내인골 등 여러갈래가 져 있고 그 계곡마다 폭포와 기암괴석을 거느리고 있다.
은선계곡을 따라 오르는 내내 물소리가 귀에 흘러든다. 바람소리 새소리 물소리...온갖 소살거리고 속삭대는 소리들이 그 조붓한 길에 함께 한다.


▲ 산길에서 만난 할아버지가 건네준 으름.
ⓒ 전라도닷컴
들꽃들도 많다. 홍자색 물봉선은 이제 시들어가는 참이나 산 곳곳에서 흔하게 만나 볼 수 있고 붉은 자줏빛 개여뀌, 보랏빛 이삭모양의 향유, 연분홍 고마리, 구절초와 혼동되기 쉬운 보랏빛 쑥부쟁이같은 꽃들도 볼 수 있다.
이 산 어디에는 으름(어름)도 있나 보다. 으름을 따서 손에 들고 내려오다 아무 망설임없이 이쪽에 건네 주는 할아버지도 만난다. 작은 바나나같이 생긴 으름.
동행한 이에게 "으름은 언제까지 있는 거냐"고 물었더니 대답은 "사람들이 딸 때까지...".

계곡이 많은지라 초입에 다리가 많다. 나무다리여서 눈을 덜 거슬린다. 
'곰의말채'란 푯말이 붙은 곳의 다리쪽 계곡이 아름답다. 계곡은 여름에만 찾을 것은 아니니 이 가을, 물 위에 비친 하늘이 좋고, 그 하늘에
나뭇잎들이 곱다.

▲ '탐방로 아님'에서 누군가 '아'자를 지워놓은
표지판.
ⓒ 전라도닷컴
서울에서 왔다는 한 할아버지 등산객은 내리 3년째 이맘때면 입암산을 찾고 있다고 한다.
왜? "때묻지 않은 산이고 순한 산이어서". 이렇게 쉬엄쉬엄 오를 수 있는 산이 흔치 않다고.
어떤 산행객은 "걷다 보면 노래가 절로 흥얼거려지는 길"이라고 한다.
산길을 오른다기보다는 숲길을 걷는 듯 평탄하고 순한 길이다. 그래서 숨이 헉헉 차거나 가파른 고비가 없이 훌쩍 꼭대기에 닿게 된다. 어린아이들과 함께 와도 좋을 가족산행 코스다.
올라가다 보면 '등반로 아님'이라는 푯말이 하나 서있는데 누군가 장난으로 '아'자를 지워서 '등반로 님'을 만들어놓았다. 밑의 'No Trail'에서도 'No'자를 지워놓았다. 산길을 가는 이들에게 잠시 어리둥절한 혼란을 줄 수도 있으련만, 정작 부잡스런 그 당사자는 별 생각없이 즐거웠을 것이다.


갓바위에 오르니  "오매  날개만 있으면 곧 날아가것네" 하는 말이 절로 나오게 바람이 세다. 언제 해가 쨍쨍했더냐 싶게 땀찬 몸이 금방 선뜩해지게 바람이 세차다.
이곳 정상에서의 조망은 마치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기분이다. 호남고속도로와 호남선 철길이 실낱처럼 내려다보이고 동으로는 망해봉, 연지봉, 신선봉을 들어올린 내장산도 보인다. 남동으로는 백암산 상왕봉과 사자봉이 마주보인다. 남으로는 시루봉과 장자봉 능선이 장성호 건너 멀리의 병풍산과 함께 첩첩산중을 이룬다. 서쪽으로는 노령과 호남터널이 내려다보이고, 노령 위로는 쓰리봉과 방장산이 마주 보인다. 물론, 이 모두를 어찌 알 수 있으랴. 여기 오른 이들이 주변을 제대로 알고 둘러볼 수 있게 사진을 찍어 '표기'를 해놓은 덕이다.

▲ 갓바위에서 내려다본 풍경. 입암저수지와 호남고속도로 등이 내려다보인다.
ⓒ 전라도닷컴
입암산은 호남평야와 나주평야를 갈라놓은 노령산맥의 전남,북 경계 지역에 있고 남북을 잇는 국도, 철도, 고속도로가 모두 이 산 서쪽의 갈재협곡을 통과하는 교통의 요충지이며 서해안과도 가까운 거리에 있어 옛부터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여겨져왔던 곳이다. 서쪽의 갓바위에서는 노령산맥을 남쪽으로 넘는 모습을 내려다보며 감시할 수 있고, 사방이 높고 중간은 넓어 외부에서 성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요새지다. 그래서 산정을 중심으로 높이 3미터에 전체길이 5킬로미터의 입암산성(사적 제384호)이 있었다.
성은 이미 삼한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며, 후백제 때도 나주를 왕건에게 점령당한 견훤이 중요한 요새지로 삼았던 곳이라 한다. 그러나 문헌에는 고려때 몽고군에 항거하여 싸운 기록이 처음이다. 고려사절요에 1256년(고종 43년) 송군비가 이 성을 지키고 몽고군을 물리쳤다는 기록이 있다.
몽고의 난 이후 조선시대 들어 입암산성은 별로 크게 쓰일 일이 없어 방치되었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다시 중요한 요새가 되었다. 장성읍지에 의하면 임진왜란 발발 이듬해인 1593년(선조26년)에 장성현감 이귀가 장성 사는 윤진과 더불어 포루와 군량창고를 쌓는 등 개축했으며, 정유재란(1597년)때 왜장 소서행장의 예하 부대가 북상하는 것을 당시 산성별장 윤진이 관군, 의병, 승병 등을 지휘하여 싸우다가 순절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효종 때에는 성을 개축하여 둘레 길이가 2795보에 달했다. 또한 4곳의 포루와 2개소의 성문, 3개소의 암문이 있었으며, 성내에 흐르는 계곡물로 만들어진 9곳의 연못 외에 샘 14곳을 더 파서 물걱정이 없었다고 한다. 또 성안에는 5개의 사찰이 있었고, 승장 1명을 두었으며, 각종 무기를 두는 창고와 군량 7천석 이상을 비축하고 있었다고 한다.

성이고 요새였으니 권력의 부침에 따라 시대의 변천에 따라 이야기가 많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입암산성이 언제 폐쇄되고 그 시설과 건물이 언제 없어졌는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다만 동학농민혁명때 전봉준 장군이 몸을 피해 순창으로 향하던 중 당시 산성별장(이종록)과 친분이 있어 하룻밤 묵어갔는데 이 일로 별장이 처벌을 받았으며 그후에는 별장이 없어졌다는 설도 있다. 남문루는 일제말엽까지 있었다고 한다.

▲ 성벽 흔적이 뚜렷한 남문터. 정연하게 쌓은 성벽이 남아 있어 당시의 석축방식을 짐작케 한다.
ⓒ 전라도닷컴

침략과 지킴의 날카로운 긴장과 대립. 그러나 그 시대의 격렬함을 느껴볼 길 없이 다만 지금은 그 곳에 고요하게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 인위적으로 파낸 흔적들이 뚜렷한 남문터의
돌들.
ⓒ 전라도닷컴
하산길에는 잡초더미에 버려진 돌절구가 있는 집터에 닿는다. 일명 성내(城內)로 불리기도 했던 집터 부근은 공자의 유교를 다시 밝힌다는 갱정유도(更正儒道) 교인들이 예전에 살던 곳이다. 광복 전까지 8가구가 마을을 이루어 살았으며 87년까지는 1가구가 남아 있었다고 한다. 
사람이 살았던 흔적은 이제 돌절구에서만 겨우 발견할 수 있다.

좀더 내려오면 성벽 흔적이 뚜렷한 남문터를 만나게 된다. 위쪽의 북문터와 달리 아직까지도 정연하게 쌓은 성벽이 무너지지 않고 남아 있어 당시의 석축방식을 짐작케 한다. 비밀의 화원에 들어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새삼 세월과 시대, 사람살이를 돌아보게 되는 장소적 힘을 지닌 곳이다.



가는 길:호남고속도로 타고 백양사 입구 나들목에서 백양사 쪽 1번국도로 진입. 백양사 못미처 할렐루야기도원에서 왼쪽으로 남창계곡 드는 길이 나 있다. 이 길로 3킬로 올라가면 계곡 입구 주차장.

여행쪽지
-제1코스: 전남대 수련원-계곡갈림길-은선계곡-갓바위-산성남문-수련원(총8㎞ 3시간20분소요)
-제2코스: 전남대 수련원 - 산성북문 - 시루봉 - 노령역(총 6㎞, 약 2시간30분소요)
-제3코스: 전남대 수련원 - 몽계폭포 - 백암산 - 상왕봉 - 순창새재 - 소죽엄재 - 내장산 - 까치봉 - 내장사(약 8시간 소요)

▲ 산행코스
ⓒ 전라도닷컴
주변에는 무엇이 있나:
가래(갈애)바위-입암산 서쪽 끝에 있는 갈재는 노령산맥을 관통하는 중요한 교통로로 노령산맥의 이름이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이 고개는 한때 우령이라고도 불렀는데 노령이라는 이름은 고개아래 있는 가래바위의 전설에서 연유한다.
이 바위는 눈, 코, 입이 확연한 미인의 모습으로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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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귀 효자비-가래바위 밑에 동강난 비가 있다. 이 비는 입암산에서 태어난 유명한 효자 전일귀를 추앙하여 세운 비인데 동학농민혁명 때 전봉준이 지나다 이 비에 제사를 지내주어 관군이 이 말을 듣고 성씨가 같다 하여 비를 동강냈다고 한다.
전일귀는 어려서 불효를 했는데 나이들며 이를 후회하고 부모님을 섬기기에 정성을 다하였으며, 불효죄인이라 하여 평생 하늘을 보지 않았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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