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동네에 사는 나무를 좋아하는 사람의 정원을 자세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계기가 있어 살펴보다 잘 가꾸어진 호랑가시나무를 보고 양림동호랑가시나무를 떠 올렸다.
풍성하게 초록의 열매를 가득 달고 가을에 새들에게 먹이식물로의 역활을 아주 잘 한다고 자랑이 대단하였다.
눈 오는 겨울에 빨갛게 익은 열매가 붙어 있다면 초록의 싱그러움과 빨강의 그리움에 하얀 순수함이 어울려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겠지만 불행하게도 먹이식물로의 역활을 아주 잘 하다보니 빨강 열매의 모습은 거의 보기가 어렵다고 했다.
호랑가시나무 옆으로 부처손이 손바닥을 쫙 펴고 자라고 있어 이런 곳에서 살기가 어려울 것인데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집으로 들어 온 지가 40년이 넘었다고 말하며 숲에서와 똑 같은 환경을 만든다고 바위에 붙혔다면 진즉 죽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때로는 우격다짐이 통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고 눈을 돌려 어렸을 때 추억이 있었던 먹감나무를 둘러보니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 오르면서 먹감이 익었을 때 엄청 달고 맛 있었다는 것과 한 입을 베어물면 까맣게 물든 속내를 들어내며 입 안에 진한 향기와 털어 낼 수 없는 향기가 지금도 느껴진다.
먹감나무 옆으로 꽝꽝이나무를 자연의 모습을 거슬리고 잘 다듬어 질서 정연한 모습을 보여 주고 옆으로 담을 덮고 자라고 있는 송악과 그 밑에 겨우 살고 있는 나리와 원추리 종류가 좁은 면적에 부대끼면서 살고 있었다.
엄나무, 모과나무, 황금측백, 은행나무, 드릅나무, 앵도나무, 매화나무, 살구나무 등 많은 나무등이 좁은 면적에 부대끼며 살고 있어 미쳐 몸통을 키우지 못하고 키만 키우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나무를 좋아해서 좁은 면적에 엄청 많은 종류의 나무를 심고 가꾸었지만 나무에 대한 상식이 부족하고 인간의 기본이 되는 욕심이 가득한 덕에 가꾸지 못 한 숲 처럼 혼란스러웠고 아니 아직 힘으로 밀어 부치는 경쟁의 상태에 있는 숲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키는 힘이 없이 크기만 하고 몸통은 한 없이 가늘고 오로지 하늘의 빛을 향해 햇빛을 바라기하려는 모습에 처철함까지 보였으며 정원이라기 보다는 나무를 양육하는 것처럼 보였다.
조심스럽게 나무가 너무 많아 가늘고 힘이 없어 보인다고 말하니 심을 때는 충분한 거리라고 생각 했는데 자라고 보니 좁아졌다며 윗 쪽의 대밭을 약간 밀어내고 나무를 솎아내어 옮기겠다고 하였다.
대밭에는 옛날에도 엄나무, 은행나무, 팽나무, 오동나무가 아름드리로 자라고 있었는데 45년이 지난 지금은 더 큰 몸매를 뽐내며 살고 있을 것이다.
오늘의 주인공은 동네사람의 정원을 이야기 하고 싶어서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니고 이 집 정원에 있는 배롱나무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정원에는 배롱나무가 약 6그루 정도가 있었는데 한결 같이 가지는 가늘고 키만 커서 배롱나무가 가지고 있는 정원수로서의 모습은 어느 곳에 서 있는 나무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배롱나무를 바라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어떻게 가지와 가지를 붙혀 한가지를 만들 생각을 했내고 물어보니 특별한 뜻은 없었다고 말했으나 연리지의 숭고한 사랑을 생각하며 가족간의 사랑을 진정으로 갈구하며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그러나 근자에 어떤이로부터 나무를 저렇게 꼬아 놓아 집안에 우환이 생길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지 걱정을 하고 있는 것 같았으며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의 위안을 삼고 싶다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다!. 마음 먹기에 달렸지. 배롱나무 가지와 가지를 연결하여 붙혀 놓았다고 안 좋은 일 있겠냐고". 대답했다.
사람의 생각으로 무엇인가를 갈구하며 행 한 행동이 나중에는 그 행동으로 인하여 다른 근심을 불러오는 계기가 되었다.
동종의 나무가 자연에서 자연적으로 가지와 가지가 이어졌다면 사람들은 그곳을 지나면서 자신들의 사랑이 영원히 이어지기를 간절하게 바랄 것이다.
그러면서 나무를 찬양하고 아름답다며 온갖 미사어귀를 사용하며 연리지가 된 나무를 극찬 하는 것은 자연의 숭고함이 묻어나는 나무이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나무가 자연적인 조건에서 스스로 연리지가 되었다면 문제가 없었겠으나 정원에서 인간의 뜻과 의지에 따라 연리지가 많이 생성되었다고 연리지에 대한 숭고함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자연에서의 자연스러움 보다는 인간의 부자연스러움이 눈으로 보여 마음으로 보는 연리지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가 없었기 때문에 자연과 정원의 연리지가 각각 다르게 느껴졌을 뿐이다.
연리지가 자연속에서도 흔하게 볼 수가 있는 현상이라면 연리지에 대한 사랑도 별 것이 아닐 것이며, 다만 이집 정원의 배롱나무에는 이런 모습의 연리지가 너무나 많이 있다는 것이 부자연 스러웠을 뿐이었다.
같은 종류의 나무끼리 잘 만들어지는 연리지도 위의 그림에서 처럼 조건이 맞지 않을 때는 만들어지지 않으며 힘의 균형이 맞아야만 아름다운 연리지가 만들어 진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위 그림의 참나무류에서 보는 것처럼 사람이 우격다짐으로 만들어 놓은 연리지나 숲에서 자연적인 동종의 나무에서도 우격다짐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상처는 낼 수 있었지만 사랑은 얻지 못한 것이 어찌 숲에서 저 나무만의 일이겠는가?. 하지만 사람이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 인 것이다.
사랑을 강제로 얻기 위해서 아니 사랑이란 허울을 쓰고 우격다짐으로 밀어 붙이는 과격하고 치졸한 행동으로 인하여 평생 생채기를 달고 살아야 하는 경우도 생기고 자신의 귀중한 부분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정원에서 사람의 뜻으로 만들었던 연리지가 근심을 불러오게 되었듯이 숲에서도 우격다짐으로 행동을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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