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깔크막의 우리동네 이야기

우리동네 죽사리 이야기

깔크막 2015. 7. 2. 05:55

우리동네 죽사리 이야기

 

우리동네 이야기를 하고 싶어 동네 한바퀴를 돌았다.

동네라고해봐야 20여호도 채 안되는 작은 동네로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을 보여주는 곳에있다.

작년 10월 지금 내가 살고있는 동네을 처음 만났다.

인상적인 돌담과 동네 뒷산의 산이 묘하게 어울려 마음이 편해짐을 느꼈다.

서둘러 이사를 하였다.

우리동네전경

동네 뒷산의 이름은 대절산으로 높이가 220m이며 지금은 대절산사가 있지만 옛날에는 죽사라는 절이 있었다고한다.

동네 이름도 이 절의 영향으로 죽사리가 되었다고한다.

담양의 대밭과는 비교 할 수가 없지만 대절산에는 신이대가 많다. 호랑가시나무도 많고 소나무도 많다.

신이대 밭의 초입에 화미터가 있다.

죽사의 동자가 꼭 한사람 분량만 나오는 쌀구멍을 부지깽이로 쑤셔버렸는데 그 뒤로는 불에 탄 쌀이 나왔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동네 입구에는 "대절산 화미터"라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화미터라고하면 금전산이나 백암산에 전해져 내려오는 쌀이 나오는 구멍과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인간의 부질없는 욕심을 버리라고 경계하는 것 같다.

대절산 아래에는 일본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며 전쟁 때 끌려간 우리 백성을 데리고 온 강황선생을 추모하는 비와 제각이 있다. 

강황선생은 강희맹의 5대손으로 1593년 전주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형조좌랑을 지냈다.

정유재란 때 이순신장군의 휘하로 합류하러가다 왜군을 만나 가족이 모두 일본으로 끌려갔다.

일본에서 일본의 역사 일본의 지리 일본의 인물등을 소상하게 알아내어 "부중견문록"을 작성하여 조선(본국)으로 보냈으나 귀중한 자료를 거들어 보지 않자 귀국하여 고향에 숨어 후학을 양성하게 된다.

불갑사가 있는 불갑면에 강황선생을 배향한 내산서원이 있으며 서원 뒷편에 선생의 묘가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소나무는 우리동네 뒷산 가는 길 중간의 묘역의 둘레에 있는 나무로 세월이 많이 흘러 여러 그루가 죽었지만 아직도 낙낙장송 처럼 버티며 우리동네의 아름다움을 뒷바침하고 있는 나무군락이다.

묘역 앞에는 인삼밭이 있으며 옆으로는 담배밭이 있고 묘역의 앞으로 20여호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곳이 우리동네다. 

동네 앞에 있는 거대한 소나무는 해송으로 주변이 모두 논이나 밭으로 이루어졌으며 이곳에서 백수해안에 떨어지는 낙조를 운이 좋으면 감상 할 수가 있는 곳이다.

멀리서 바람이 불면 웅웅거리며 세차게 전기를 생산하는 풍역발전기가 쉴 틈없이 돌고 있는 모습도 볼 수가 있다.

동네 한바퀴를 돌면서 담은 운치있는 돌담의 모습과 정감이 가는 동네 구석구석의 모습과 사계의 모습과 촌로의 길게 패인 주름속에서 우리동네 이야기가 가득하게 펼쳐질 그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