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거리 문화"를 아십니까?.
"때거리 문화"를 아십니까?.
나무가 모여 터전을 마련한 곳이 숲이다.
아래는 풀이 자라고 그 위로는 여러 종류 나무가 키
순서대로 적당히 경쟁하면서 삶의 공간을 확보한다.
이들의 한결 같은 목표는 ‘어떻게 하면 햇빛과 더 많이 만날 것인가’이다.
위쪽
큰 나무들의 보호를 받는 작은 나무들은 대체로 바람에 흔들릴 때 잠깐씩 들어오는 햇빛으로도 살아간다.
조상이 물려준 유전형질에 따라
환경에 순응한 나무들이 숲이란 안정된 사회를 만들어간다.
그러나 모든 나무가 이런 자연의 규칙에 충실한 것은 아니다.
소나무 전나무 등 대부분의 침엽수는 ‘순수 혈통’을 고수하면서 자기네끼리만 한곳에 모여 살기를 고집한다.
활엽수는 아예 발도 못
붙이게 원천봉쇄하고 형제들끼리 수천·수만 그루가 별천지를 펼친다.
그들은 우선 곧게 빨리 자라고 가지를 서로 거의 맞닿게 뻗어, 아래
짙은 그늘을 만들어 버린다.
아무리 적은 햇빛만 요구하는 나무라도 버틸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한 술 더 떠서 자기들에게는
해(害)가 없고 다른 나무는 잘 못 자라게 하는 화학물질까지 분비한다.
이런 ‘떼거리 문화’로 침엽수는 ‘나무나라’에서 과연
성공한 삶을 이어가고 있을까.
대답은 ‘아니다’이다.
예를 들어 활발한 경쟁으로 다양한 숲을 만드는 열대지방에서 침엽수는 아예
발도 붙이지 못한다.
결국 상대적으로 자람 조건이 열악한 온대와 한대지방으로 밀려나 버렸다.
아무 곳에나 잘 적응하는 활엽수와는
대조적이다.
다양성을 무시하고 한 가지만 고집하는 ‘순수 혈통주의’는 경쟁력을 약화한다.
나무나라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이익집단 사이의 갈등구조로 고민하는 우리 삶에서도 충분히 타산지적으로 삼을 만하다.
박상진 / 경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