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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이야기 장성 고성산(古城山)의 주천자 묘(墓)이야기

깔크막 2010. 2. 3. 15:20

장성 고성산(古城山)의 주천자 묘(墓)이야기

장성 고성산에는 명나라 태조였던 주천자(朱天子)에 관련된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데, 해발 546.3m의 고성산 정상에 명나라 태조 주원장의 묘가 있다고 한다.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주원장의 선조는 원래 신라사람으로 중국 오나라로 건너갔다고 하는데, 사실 여부는 확인할수 없고 주천자의 선조가 밝혀지지 않아 그냥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으나 명나라 태조의 무덤이 고성산에 있다는 이야기 하나만으로 볼 때는 거의 불가사의 한 일이다. 

명나라 태조인 주원장(1328년∼1398년)은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17세에 고아가 되어 탁발승으로 지내다가 홍건적 부장이었던 곽자흥(郭子興)의 부하가 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고, 그 후에 그는 강남의 거점인 남경을 점령하여 양자강 유역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각지의 군웅들을 모두 굴복시켜 명나라를 세웠던 인물인데 어떻게 어떤일로 명나라 태조였던 주천자의 묘가 고성산에 있게 되었는지는 모르나 고성산 주변의 주민들은 이 사실을 사살로 믿고 지금까지도 묘를 관리하고 있다.


                                 (고성산 정상에서 바라 본 영광과 고창의 들녘 모습)

 

주민들은 정월 초하룻날 주천자의 묘 밑에 성묘를 할 수 있도록 7개의 단을 쌓아 놓고 성묘를 하면 무병장수 한다고 믿고 있으며, 혹시라도 주천자의 묘가 천하명당이라고 하여 몰래 도장(묘가 있는데 그 밑에 또 다른 묘를 쓰는 형태)을 하면 가뭄이 든다는 속설을 사실로 받아드리고 묘를 관리하고 있다.

고성산 주천자의 묘 부근을 밑에서 보면 깍아지른 절벽 뿐인데 정상에 있는 주천자의 묘 주변은 넓은 억새풀로 덮혀 있으며, 상봉에서 동쪽으로 조금 내려오다 능선이 3개로 갈라지고, 가운데 능선은 국새가 짜여 묘자리가 하나 쯤 있을 만한 곳인데 바로 그곳에 주천자의 묘가 있다.

풍수지리설로 설명을 한다면 이 맥은 무등산을 바라보고는 있지만 무등산 정상인 천왕봉을 옆으로 비껴 서듯이 흐르고 있으며, 일본의 후지산과는 정면으로 버티고 서 있는데 이것은 후지산에서 발산되는 일본의 정기를 정면으로 막아서고 있다.

명나라 태조인 주천자의 묘가 어떻게해서 고성산에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없으나 단지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주원장의 선조가 조선사람이라는 설과 임진왜란때 명나라의 이여송이 조선의 산세가 좋아 앞으로 큰 인물이 나지 못하도록 맥을 끊었다는데(북이면 곰재, 수리재 중간지점, 부동에서 율정 넘어가는 박절골, 북하면 용두리 용머리 부분, 장성읍 장안에서 새보(新洑)를 넘어가는 곳과 재봉산 밑) 고성산은 맥을 끊을수가 없어 묘를 썼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주천자의 묘가 영구적으로 보존되도록 하기 위하여 "성묘하면 복 받는다. 또는 도장하면 가뭄탄다.'는 등의 말을 퍼뜨렸는데 옛날에는 가뭄으로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없어지는 배고품이 최고로 무서웠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으며, 병과 약을 주는 듯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면 자연스럽게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 힘이 들지 않는 일을 할 수가 있는데 그것은 일년에 한번 그것도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인 설날에 성묘를 하게 하므로써 묘가 오랫동안 유지되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가슴 아프지만 다른 이야기로는 숭명사상에서 나왔다는 설과 산수가 좋은 이 곳 말고 어떤 곳에서 천자나 기인이 태어났겠느냐는 생각에서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닐까 하지만 혹시라도 우리 선조들 중에 어떤 이가 자신의 조상묘를 쓰고 위와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 퍼뜨렸을 수도 있을 것이다는 생각을 해 보는데 그것은 가뭄이 들어 비가 오지 않으면 우리 조상들은 산의 정상에 있는 묘지가 부정을 타게하여 비가 오지 않는다고하며 묘지를 훼손하는 풍습이 있었기에 훼손하지 못하도록 이야기를 만들어 퍼뜨리지 않았을까?.

(장성 군청에서 발췌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