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청리는 본시 동네 터가 와우형국인디 그래서 이 앞에 높은 산을 가마솥을 엎어 놓은 모습이다 해서 가마봉이라 하고 즉 소에게 쇠죽을 쑤어 먹게 한다는 것이재. 또 신안 저 우에 들어 가서 반각굴이라고 있는디 거그 가면 질이 아홉인께 아홉갈래라고 불러야 한디 그냥 와우갈래라 그러고 마을 맞은편 요 앞에 풍청대 세운디 쪼금 들어가면 원굴이란 데가 있는디 원굴이란디도 소가 밭을 간다치면 “ 워 ”한다 해서 원골이라 하재. 개안 남쪽 들을 감밭태 그러는디 소가 가는 밭이라 해가지고 밭갈경자 밭 전자 경전평이라고 한문으로는 쓴다 그래요. 어쨌든 이 마을은 소와 관련된 이름이 많은데, 누운 소는 옛날 흔히 현자가 은거한 모양을 비유했다 그런디 이곳에 외성당과 비룡대가 있어요. 외성당은 이조 중엽의 학자 안청공 박광준이란 분이 지었는데 지금은 그 타만 있고 다만 거기 은행나무 밑에 가서 이렇게 큰 돌이 남아있는디 그것은 우암 송시열 선생이 안청공을 뵐 올 때 그 돌에서 하마해 내리시고 돌아가실 때도 거기서 말을 타셨다 그래요. 그 안청공의 후손이 개안 남쪽에 있는 산 등성이, 거가 용이 하늘로 오르는 형국이라 해서 비룡등이라 한디 거시기 박 노나라 노자, 길 수자 그 양반이 호는 서금이신디 거기다가 바람 풍자 하늘 천자 풍천대를 세웠어요. 왜놈들이 처음에 선비들 한테 은사금이라고 돈을 줬는디 그 돈을 기어니 안받으시고 여러 번 경찰서에 잡혀가셨는데 그러시고나서 풍천대를 세우겠어. 풍천대라는 이름은 시전에 ‘ 비풍하천 ’이란 시가 있는데 거 옛 나라가 망한 것을 원통해 하며 지은 시인디 거기서 풍자와 천자를 따서 풍천대라 이름 짓고 조선이 망한 것을 원통이 여겨 출입을 삼가셨다 해요. 그런디 시전을 보면, ‘ 비풍하천 ’이란 말을 못찾것고 다만 ‘ 비풍 ’이라는 편명한 보았어여. 그래서 흑자는 풍천대가 계안 남쪽에 있는 용이 하늘로 오르는 형국이라 해서 비룡대라는 등성이에 있기 때문에 그 용이 ‘ 비풍어천 ’한다는 데서 풍천을 따서 이름지었다고도 해요. 그런게 용이 바람을 잡아타고 승천하는 것처럼 머지않아 우리 조선도 그랬으면 하는 마음으로 지섰는가 모르재. 어쨌든 해년마다 인근 선비들이 모여서 강독하고 제사를 지내고 그랬어요.(광산문화원 자료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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