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수정 이야기
관수정은 전남 문화제 100호로 장성군 삼계면 내계리에 있으며, 광주에서 가는 길은 지방도로 816번을 이용하여 임곡을 거쳐 영광군 대마면으로 이어지는 고성상 아래에 있으며, 쉽게 찾는 법은 상무대을 찾아가면 안내판이 잘 설치되어 찾아가기가 쉽다.
삼계면 사창리에서 구 도로를 타고 5분 쯤 가다보면 관수정의 안내판이 있고 사창리를 막 벗어나는 곳에 나이를 엄청 많이 먹었을 것 같은 왕버들 나무도 만날 수가 있으며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소나무 숲 속에 또 다른 정자가 보인다.
관수정(觀水亭)은 맑은 물을 보고 마음을 씻는다(觀淸洗心)는 뜻이 있으며, 지지당.관수정이라는 호를 갖으신 송 흠이 중종 34년 1539년에 건립하였던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2002년에 중수를 하여 무척이나 깨끗하고 정갈해 보였으며, 단청의 색상도 아주 선명하여 관리되지 못했던 다른곳의 정자와는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정자의 내부에는 홍언필 김안국 성세정 신광한 김인후 임억령등의 시가 걸려 있으며,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1칸 팔작지붕의 형태로 겹처마를 둘렀으며, 두벌대의 석제기단 위에 복발형의 주춧돌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워
천방사와 용암천과의 아름다운 경치가 조화롭게 어울러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뒤에 병풍처럼 소나무가 둘러처져 있고 전면의 양쪽에는 커다른 은행나무가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징표를 사방에 남기고 있었고 느티나무와 동네 입구의 호랑가시나무가 우리들의 시선을 잡아 끌기에 충분했다.
선생이 살아 계실 때에 임금은 충으로 섬기고 부모에게는 효를 다해 그 뜻을 영원히 기리고자 2002년에 다시 수리하여 지금의 모습을 보여 주게 되었다.
(관수정의 전경)
기영정은 중종 임금이 당시 전라감사에게 명하여 임금에 충하고 부모에 효도를 다 한 선생에게 건립하여 주었으나 세월이 흘러 퇘색되고 썪고 바래져서 관수정과 함께 국비의 보조와 종친들이 힘을 모아 중수한 아름다운 정자이다.
인위적인 가식이 전혀 들어 있지 않는 소나무 숲의 높으막한 언덕 위에 소박하며 정갈하게 지어진 모양새가 멀리서도 고고하게 다가오는 맛깔나는 정자가 아닐까한다.
비록 옛날의 영화와 주변풍광은 많이 바뀌어 미루어 짐작 할 수 밖에 없는 풍경이지만 관수정 옆으로 포장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조그만 오솔길이었을 것이고 콘크리트로 범벅이 된 용암천도 옛날에는 맑은 물이 사시사철 흐르고 물고기 때가 유유자적 유영을 했을 것 같은 아름다운 풍경이었을 것이다.
태청산과 고성산에서 걸르고 걸러 내려 보냈으니 그 물은 얼마나 달고 맛있고 깨끗했을까?.를 생각하며, "맑은 물을 보고 마음을 씻는다"는 선생의 고귀한 뜻을 가슴에 안고 동네 어귀를 빠져 나왔다.
(기영정의 전경)
송 흠(1459~1547)선생은 영광 출신으로 문신이고 자는 흠지 호는 지지당 또는 관수정 본관은 신평이다.
21세에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연산군과의 정치적 교감이 맞지 않아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여 후진 양성에 주력하게 된다.
후에 담양부사(1528) 전라도관찰사(1534)가 되었으나 노모의 봉양을 위해 왕의 허락을 받고 고향을 돌아와 101세까지 산 노모를 극진히 효로써 봉양하니 7번이나 효렴으로 상을 받기도 했다.
1538년에는 청백리로 녹선되고 이조 병조판서를 거쳐 판중추부사 겸 지경연사에 이르게 되었고 영광의 수강사에 제향되었고 시호는 효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