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문화를 공부하기전에
1) 불상의 기원
불상은 불교의 가르침이 조각을 통해 예술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불상의 기원은, <불설대승조상공덕경>이라는 경전에 의하면-
어릴 때 세상을 떠난 어머니 마야부인을 위해 석가모니가 도리천으로 올라갔을 때 지상의 밤사(Varmsa)국 우다연(Udyana)왕은 석존을 사모하는 정이 지나쳐 그만 병을 얻었다. 이에 신하들이 향나무로 석존의 모습을 새겨 왕에게 갖다 드리니 왕의 병이 나았다는 내용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다연에게 갖다 바친 향나무에 새긴 석존의 모습이 최초의 불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후대사람들이 설화로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하고, 석가는 스스로 자신을 신격화(우상화)하는 데 반대하여 형상을 만들지 못하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자칫하면 불상을 조성하는 자체가 부처의 덕성과 진리를 형상으로 한정시켜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경계하였다. 학계에서는 무불상시대라 하여 석가모니 열반 이후 약 500년 동안은 불상이 없던 시기로 보고있다.
그 한 예로, 인도의 산치대탑에 장엄조각되어 있는 경우를 보면, 석가의 생애를 나타낸 조각은 외벽에 조각이 되어 있으나, 석가모니의 모습은 나타나 있지 않다. 이는 석가모니를 일정한 모습으로 규정하는 데서 오는 오해나 잘못된 선입관을 불식시키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또한, 석가모니는 자기의 모습에 연연하지 말고 법(法:깨달음의 실체)을 보라고 하였다. 그 한 예가 경전에 나와있는데-. 어느 때 한 비구가 중병으로 죽음에 이르러 석가모니를 찾아가 그의 성스러운 발에 이마를 대도록 허락해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러자 석가모니는 ‘곧 썩어 없어질 이 몸을 보지 말고 법을 보아라’라고 말하고 비구를 설득한 적이 있다. 5백년의 무불상시기의 예배대상은 본생도․불상도․연꽃․보리수․법륜(설법․전파) 불탑․블족적․불아 등이었다.
그러다가 역사적으로 불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2세기 초엽 쿠산왕조 때, 인도 서북부 간다라와 마투라 지역에서이다. 특히 간다라는 알렉산더의 동방 원정으로 헬레니즘 문화가 오랫동안 침투해 있었던 지역으로,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신을 대리석으로 조각해 모셔 놓았는데 이 영향을 받아 최초의 불상이 제작되었으리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한편 서구의 영향을 받지 않은 불상문화가 같은 시대에 인도 갠지스강 유역의 마투라지방에서도 일어났다. 간다라 불상이 외적인 동기에서 출발하였다면 마투라 불상은 내적인 동기에서 탄생하였다고 볼 수 있다. 간다라 불상과 마투라 불상은 외형상 많은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간다라 불상은 그리이스 로마의 영향을 받아 전체적인 분위기가 신상(神像)이며, 마투라 불상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인도의 토속신앙적 분위기가 강하다. 간다라 불상이 물결(곱슬머리)모양의 머리에 이목구비가 비교적 뚜렷하며 수염이 없는 서양인 얼굴을 닮고 있는 데 반해 마투라 불상은 소라 머리 모양에 육계와 수염이 있는 동양인을 닮고 있다. 간다라 불상은 눈을 반쯤 감고 아래를 내려다보며 명상하는 출가 전의 싯다르타를 연상케 하고, 마투라 불상은 눈을 크게 뜨고 자신감있는 미소를 짓고 있는 정각 순간의 석가모니를 연상케 한다. 간다라 불상은 법의가 두껍고 옷주름이 많은 통견이 흔하지만, 마투라 불상은 법의가 얇고 우견편단이 많아 육체감을 느끼게 한다. 간다라 불상은 석가모니의 역사적인 생애에 촛점을 맞추어 사실적으로 표현되었고, 마투라 불상은 전생담을 바탕에 깔고 이상적으로 표현되었다. 재질을 보면, 간다라 불상은 회청색 편암이 많아서 전체적으로 어둡고 딱딱한 느낌을 주지만, 마투라 불상은 밝은 사암을 써서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그 후 5세기경, 인도에 굽타왕조가 들어서면서 강력한 왕권과 정복을 반영하듯 불상문화는 황금기를 구가한다. 굽타의 불상은 간다라와 마투라 불상이 조화를 이루면서도 마투라 불상을 많이 따 르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거대한 아잔타 석굴의 마애불과 석굴 안에 있는 불상들이다.
굽타왕조에 의해 만개한 불상 문화는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 양질의 사암과 대리석을 재료로 많이 조성되기 시작한다. 5세기 중국 북위의 불상은 왕즉불(王卽佛) 사상의 영향을 받아 특히 법의의 양식이 크게 달라지는데, 도포식의 법의가 등장한 것이 그 좋은 예이다. 남북조시대에는 많은 사원이 세워지면서 불상과 벽화가 양산된다. 수나라의 불상은 석가모니의 초월적인 존재성을 추상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특유의 은근한 미소는 우리나라 백제불에 영향을 준 바 크다. 용문,운강,돈황 등 대규모 석굴의 불상들은 모두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통일 국가를 이룬 수.당 시대의 것들이다. 당나라시대의 불상은 중국 불상의 황금기에 속한다.